할머니 댁 소여물 절단기에 장애인 된 주정훈 "할머니, 평생 죄책감 갖고 사셨다"
"금메달 따서 가장 먼저 걸어드릴 것"
장애인태권도 주정훈 "도쿄패럴림픽서 할머니 눈물 닦아드릴 것"
장애인 태권도 남자 75㎏급(K44) 국가대표 주정훈(26·경남)은 어릴 때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는 시골 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맞벌이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할머니 김분선 씨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 지극정성으로 손자를 키웠다.

사고는 주정훈이 걸음마를 떼고 홀로 걷기 시작한 만 2세 때 벌어졌다.

비극은 할머니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찾아왔다.

주정훈은 집 밖으로 나와 소여물 절단기에 오른손을 넣었다.

끔찍한 사달이 났다.

30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체육회 훈련원에서 만난 주정훈은 "워낙 어렸을 때 일이라 기억나진 않는다"며 "할머니가 피투성이로 정신을 잃은 나를 발견하셨다고 들었다.

손을 찾지 못해 접합 수술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 나중에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일은 할머니와 부모님, 주정훈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특히 할머니 김분선 씨는 아들 내외와 손자를 볼 때마다 본인이 죄인이라며 마르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주정훈은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사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2018년이 되어서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감정이 메말라서가 아니다.

병원 검진 결과 치매 진단을 받았다.

병은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을 모두 가져갔다.

할머니는 치매 확진을 받은 뒤 손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김분선 씨는 2020년 도쿄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서 우뚝 설 손주의 모습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주정훈은 "인제야 오른손 없이도 우뚝 설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이 된다"며 "그래도 금메달을 따면 가장 먼저 할머니 목에 걸어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정훈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태권도를 배웠다.

그리고 주변의 권유로 엘리트 태권도 선수의 길을 밟았다.

그는 비장애인 선수들과 당당히 경쟁하며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를 받고 고교 2학년 때 운동을 포기했다.

주정훈은 2017년 12월에 태권도를 다시 시작했다.

태권도가 2020년 도쿄패럴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게 계기였다.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는 오랜 기간 주정훈에게 선수 복귀를 권유했고, 주정훈은 고심 끝에 다시 태권도복을 입었다.

그의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주정훈은 복귀 직후인 2018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리고 지난해엔 춘천 국제오픈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 주정훈의 첫 목표는 오는 4월 중국에서 열리는 대륙별 도쿄패럴림픽 출전 선발전에서 우승해 체급별 1장씩 걸려있는 패럴림픽 티켓을 획득하는 것이다.

주정훈은 "자신 있다"며 "할머니를 생각하며 뛰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