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인천 영종도에 있는 스카이72골프앤리조트. 티샷이 막 시작된 클래식코스 1번홀(파5) 티잉 그라운드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스크린골프만 치다 생전 처음 필드에 나온 골퍼가 티박스 구석구석을 살펴보더니 “공이 어디서 올라오나요?”라며 믿기 힘든 질문을 던진 게 도화선이 됐다. 그의 ‘머리를 올려주기 위해’ 나온 동반자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이유를 알 길이 없는 당사자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팀 캐디인 김지유 씨(37)가 ‘우문현답’을 내놨다. “스카이72는 스크린골프장이 아니어서 공이 자동으로 올라오지 않아요. 대신 1번홀은 제가 티를 꽂아 공을 올려드리겠습니다.”
김지유 캐디가 스카이72골프앤리조트 클래식코스에서 일을 마무리한 뒤 빈 카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카이72  제공
김지유 캐디가 스카이72골프앤리조트 클래식코스에서 일을 마무리한 뒤 빈 카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카이72 제공
기본 매뉴얼에 충실

그는 스카이72 클래식코스 전담 캐디다. 호텔리어, 비서를 거쳐 2016년 3월 스카이72에 캐디로 처음 발을 디뎠다. 4년차지만 스카이72가 골퍼들의 평가 등을 토대로 선정하는 ‘서비스 스타 어워즈’에서 입사 첫해부터 4년 연속 정상에 섰다. 올해는 아시아 골프산업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2019 아시안골프어워즈’에서 ‘베스트 캐디상’까지 받았다. 아시아 10개국 골프 업계 종사자 28만여 명의 온라인 투표와 전문가 평가를 거쳐 선정됐다. 비결을 묻자 “매뉴얼대로 했을 뿐”이라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캐디가 되려면 이론, 코스투어, 교육 라운드를 모두 통과해야 해요. 적힌 그대로 하는 게 전부예요.”

예컨대 스카이72 캐디 매뉴얼에는 라운드 시작 때 “회원님, 행복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돼 있다. 그대로 실천하기엔 쑥스럽기 마련. 김지유 캐디는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라운드 전 모든 골퍼의 이름을 숙지하는 것도 그가 지키는 매뉴얼이다. 캐디백이 골프장에 도착하는 순간 스코어카드에 자신에게 배정된 골퍼들의 이름을 적어 라운드 시작 전까지 외운다. “한번은 ‘OOO 회원님 오랜만에 오셨네요’라고 인사했더니 ‘우리 집사람도 내 이름 불러준 게 10년 전인데 용하네’라며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더 열심히 외우고 있어요.” 당연히 스코어가 뒤바뀔 일이 없다.

악천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건 기본이다. 비가 내려 동반자들이 카트에 피신해도 끝까지 남아 “나이스 퍼팅”을 외치고 퍼터를 넘겨받아 카트로 이동한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한 라운드에서 원래 캐디피(12만원)의 네 배를 넘는 53만원까지 ‘보너스’를 받은 적도 있다.

“클럽 챙겨드릴 순서 미리 알려드리죠”

4년차답지 않은 ‘능숙한 진행’도 한몫했다. 카트 정차 후 골퍼들과 ‘자신의 동선’을 공유하는 게 시작이다. 4명의 골퍼가 플레이한다고 가정하면 공이 날아간 위치가 제각각이기 마련. 그는 골퍼들이 카트를 떠나기 전 자신이 챙길 골퍼들의 순서를 미리 말해준다. 오른쪽 해저드에서 시작해 가운데 페어웨이를 거쳐 왼쪽 러프로 이동하는 식이다. “기다리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이 언제 도움을 받을지 알기 때문에 불만이 없고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챙기는 분도 있기 때문에 진행이 빨라진다”는 설명이다.

‘진상 골퍼’는 어떻게 대처할까. 김지유 캐디는 “진상 골퍼는 따로 없다”며 “저도 100순이라 아는데 아직 서툴고 골프가 뜻대로 풀리지 않아 멘탈이 흔들린 것으로 생각해 기분을 풀어드리기 위해 애쓴다”고 말했다. 거리나 경사를 잘못 불러줬다고 생트집을 잡아도 “제가 꼭 더 공부하고 연습해서 다음엔 정말 정확하게 불러드리겠다”며 미소를 지으면 험악한 분위기가 풀리곤 했다는 것.

김지유 캐디의 바람은 딱 한 가지.

“만족도도 높고 보람도 있는데, 아직 예전의 보조원 개념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전문직으로서 캐디를 바라봐주는, 달라진 사회의 시선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인천=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