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오 사건' 홍역 치르고도…멈추지 않는 '갤러리 셔터'
지난 6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클럽 오션코스(파72·6557야드) 11번홀(파4). 이다연(22), 김지영(23)과 치열한 우승 다툼을 하던 장하나(27)는 백스윙을 시작한 후 톱에 이르기 직전 돌연 어드레스를 풀었다. 갤러리의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이다. 한 차례 연습스윙을 한 후 숨을 고른 그는 다시 어드레스를 한 뒤 무사히 공을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시원하게 날려 보냈다.

이 홀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이 열리는 나흘 내내 장하나를 비롯해 몇몇 선수들이 백스윙 동작을 하다 가까스로 멈추는 ‘아찔한’ 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그럴 때마다 담당 선수 캐디들은 갤러리 쪽을 향해 “카메라 내려주세요”라고 읍소하기 일쑤였다. 같은 기간 경남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도 사진을 찍으려는 갤러리와 캐디와의 신경전은 여전했다. 김비오(29)의 ‘손가락 욕설 사건’이 일어난 지 겨우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내 맘대로’ 갤러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징계수위를 결정하는 상벌위원회는 끝났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진행형이다. 선수와 갤러리, 골프팬 모두 피해자라는 지적이다. 선수는 3년 자격 정지에 벌금 1000만원이라는 징계를 받으며 마무리가 되는 듯했지만 징계 수위를 두고는 골프계가 찬반으로 갈리는 분위기다. 남자 투어를 뒤흔드는 파장도 지속될 공산이 커졌다. 가뜩이나 남자대회 스폰서를 구하기 어려운 마당에 후원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이미 올 시즌 코리안투어 시즌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은 후원사가 나서지 않아 무산됐다. 더 걱정인 것은 내년 시즌이다. 골프계의 한 원로 프로는 “협회와 선수가 뭇매를 맞는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10억원 안팎의 거액을 내고 남자 대회를 후원하겠다는 기업이 선뜻 나오겠느냐”고 했다.

김비오의 행동이 프로답지 못했다는 지적에 공감하는 골프팬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갤러리 문화 역시 한층 성숙해져야 한다는 지적에 선수는 물론 대다수 골프팬도 고개를 끄덕인다. 캐디와 마샬요원들의 애걸복걸에도 경기 내내 집요하게 사진을 찍어댄, 그때 그 장소에 있던 ‘막가파’ 갤러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장하나가 11번홀에서 스윙을 멈춘 직후 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 대회 해설위원이 한 말을 되새겨봄 직하다.

“샷 하나하나에 선수 인생이 걸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갤러리의 작은 욕심이 만든 ‘샷’ 하나가 이 모든 걸 날릴 수 있다는 점을 꼭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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