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는 ‘플라이어’였다. 공과 클럽페이스 사이에 풀이 끼는 바람에 공은 그린을 넘어 뒤편 펜스까지 날아갔다. 이물질의 방해로 스핀이 덜 먹히면서 비거리가 평소보다 늘어난 것이다. 무벌타 구제를 받아 친 세 번째 샷은 홀에서 2m를 약간 넘는 곳에 멈춰섰다. 경쟁자보다 1m가량 멀었지만 파 세이브를 하기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순간 갤러리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긴장한 탓인지 페이스가 닫힌 채 스트로크 된 것이다. 공은 홀을 스치지도 못한 채 왼쪽으로 흘러버렸다. 생애 첫승은 그렇게 무산됐다.

임성재(21)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첫 우승을 아깝게 놓쳤다. 23일(한국시간) 끝난 샌더슨팜스챔피언십(총상금 660만달러)에서다. 생애 첫승은 다음 대회를 기약하게 됐지만 4타 차 열세를 뒤집고 선두 세바스티안 무뇨스(26·콜롬비아)와 연장 접전을 벌인 것만으로도 ‘아시안 최초 PGA투어 신인왕’다운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4타 열세 극복한 신인왕의 저력

임성재는 이날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의 잭슨CC(파72·7460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 4라운드에서 버디 8개 보기 2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합계 18언더파(68-69-67-66)를 적어낸 임성재는 뒤따라오던 무뇨스와 연장전을 벌여 첫 홀에서 아쉽게 패했다.

최종 라운드를 공동 5위로 출발한 임성재는 추격자답게 공격적으로 플레이했다. 1번홀(파4)을 버디로 시작한 뒤 3번홀(파5)과 5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했다. 7번홀(파3)에서 보기를 내줬지만 8~9번홀에서 모두 버디를 잡아 전반에만 4타를 줄였다. 13번홀(파3)에서 다시 보기를 범했지만 14~16번홀에서 세 홀 연속 버디를 골라냈다.

챔피언조에서 플레이하던 무뇨스는 15번홀(파4)에서 그린 주변 어프로치와 퍼팅을 잇달아 실수하면서 한 타를 잃어 1타 차 2위로 밀려났다. 2라운드 11번홀(파5) 보기 이후 39개 홀 연속 보기 없는 플레이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18번홀(파4)에서 4m 안팎 거리의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1타 차 단독 선두로 먼저 경기를 마친 임성재와 연장 승부에 들어갔다. 임성재는 연장 첫 홀에서 예상치 못한 플라이어가 나는 바람에 파를 지키지 못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임성재는 경기를 마친 뒤 “마지막 날 좋은 스코어를 내서 연장까지 갔는데 져서 아쉽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마지막 홀 상황이 칩샷 하기 어려웠는데 그래도 잘 붙였다”며 “다만 퍼트가 내가 본 것보다 좀 더 많은 브레이크가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우승은 놓쳤지만 자신의 ‘커리어 베스트’를 2위로 한 단계 높였다. 올해 3월 열린 아널드파머인비테이셔널의 공동 3위가 기존 최고 성적. PGA투어에서 첫 연장전을 치른 것도 좋은 경험이다. 다만 파3 플레이를 개선하는 건 풀어야 할 숙제라는 평가다. 공교롭게도 이날 보기를 내준 홀이 모두 파3다. 앞서 열린 2019~2020시즌 개막전인 밀리터리트리뷰트 최종 라운드에서도 파3(8번홀)에 위기를 맞았다. 두 타를 잃는 바람에 톱10 진입을 놓쳤다.


우승 희망 쏜 K브러더스

임성재가 최종합계 18언더파 280타로 2위를 차지한 가운데 안병훈(28)이 17언더파 271타로 단독 3위에 올랐다. 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이 나란히 2위와 3위를 차지한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안병훈은 2라운드에서 2타 차 단독 선두였지만 3라운드에서 단독 3위로 미끄럼을 타 막판 뒤집기가 필요했다. 최종 라운드 초반엔 다시 힘을 냈다. 9개 홀을 돌면서 버디를 3개 골라내며 한때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잠시지만 ‘코리안 브러더스’ 간 우승경쟁 구도도 연출됐다. 그러나 13번홀(파3) 보기를 범하고 비교적 쉬운 14번홀(파5)에서 2온을 노린 우드샷이 워터 해저드에 빠져 다시 한 타를 잃은 게 아쉬웠다. 이후 15번홀(파4)과 18번홀(파4)에서 다시 버디를 골라내며 단독 3위로 대회를 마쳤다.

무뇨스는 47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우승 상금 118만8000달러(약 14억원)는 덤이다. 개막전을 호아킨 니만(20·칠레)이 제패한 데 이어 무뇨스까지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2019~2020시즌 PGA투어 초반에는 남미 열풍이 불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