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미컬슨(미국·49)은 오른손잡이다. 골프는 왼손으로 친다. 그러고도 통산 43승(메이저 5승)을 올렸다. ‘레프티’ ‘쇼트게임의 마술사’ 같은 애칭을 얻었다. 곡예에 가까운 정교한 쇼트게임 실력 덕분이다. 그럼에도 그늘이 크다. 한창나이엔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에게 가려 2인자로만 머물렀다. 우즈가 스캔들과 허리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엔 한물갔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만 50세가 목전에 다가오면서도 우승과는 거리가 먼 성적을 냈던 탓이다. 지난해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멕시코챔피언십에서 5년여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을 때도 반짝 상승세라는 평이 많았던 것도 그래서다.

2077라운드 만에 받아든 생애 최고 기록

미컬슨의 기세가 무섭다. 17일(현지시간)새해 처음 출전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데저트클래식(총상금 690만달러) 1라운드에서 12언더파 60타를 쳤다. 보기 없이 이글 1개, 버디 10개를 쓸어 담았다. 2위 애덤 롱(미국)에게 3타 앞선 단독 선두다.

12언더파는 1992년 미컬슨이 프로 전향한 이후 27년 만에 기록한 생애 최다 언더파다. 지금까지 그는 2077라운드를 돌았다. 미컬슨은 60타를 이번 대회까지 세 번 쳤다. 2005년과 2013년 피닉스오픈(파71)에서 두 차례 11언더파 60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전 기록은 파71 코스였고, 파72 코스에서 60타를 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3년엔 18번홀 마지막 퍼팅이 홀컵을 돌아 나오는 바람에 꿈의 59타를 눈앞에서 놓쳤다.

이번에도 59타 목전에서 그쳤지만 의미가 작지 않다. 세 번이나 60타를 친 선수는 투어에서 그가 처음이다. PGA투어 공식대회에서 59타 이하를 친 선수는 지금까지 10명이 나왔다.

텃밭 코스서 ‘퍼펙트’ 위기관리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라퀸타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라퀸타 코스, 스테디엄 코스, 잭니클라우스 토너먼트 코스 등 3개 코스를 3라운드까지 번갈아 친 뒤 최종 라운드 진출 선수를 가린다. 3개 코스 모두 미컬슨에게 친숙하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출신인 그는 2002년과 2004년 이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위기관리는 물론 특유의 쇼트게임 능력이 돋보였다. 2번홀(파4)에서는 티샷이 왼쪽으로 당겨지면서 카트도로를 타고 흘러 페널티 구역으로 공이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버디 기회를 살려냈고, 5번홀(파5)에서는 드라이버 티샷을 벙커에 빠트리고도 버디를 골라냈다. 11번홀(파5)에서는 특기인 플롭샷(높이 띄우는 샷)으로 공을 홀에 바짝 붙여 버디를 잡았다. 12번홀(파3)에서는 벙커샷으로 파세이브를, 15번홀(파3)에서는 3m짜리 까다로운 퍼트를 성공시켜 파를 지켰다. 그와 동반 라운드를 한 애런 와이즈(미국)는 미컬슨의 11번홀 플롭샷을 ‘오늘의 샷’으로 꼽았다.

미컬슨은 “연습량이 충분치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고 기회를 많이 잡았다. 버디를 잡을 수 있었던 17번홀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17번홀(파4)에서 5m짜리 버디 퍼트를 아깝게 놓친 미컬슨은 18번홀(파4)에서 공을 홀에 가깝게 붙여 12언더파를 완성했다.

미컬슨이 PGA투어 정규 대회에 출전한 것은 지난해 10월 세이프웨이오픈 이후 3개월여 만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우즈와 1 대 1로 붙은 비공식 대회 ‘더 매치’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즈를 꺾고 900만달러를 차지했다. 이후 그는 공식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다섯 명의 한국 선수 중에는 잭니클라우스 토너먼트 코스에서 1라운드를 시작한 김시우(24)가 2언더파(공동 70위)를 쳐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