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닿아도 된다?…착각하기 쉬운 벙커샷 룰, '벌타 지뢰밭' 그대로
2010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의 라코스타리조트골프장(파72). 미셸 위(미국)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IA클래식 4라운드 11번홀(파5)에서 세 번째 샷을 했다. 신발과 양말까지 벗어 던지고 워터해저드에 한 발을 담갔을 때만 해도 1998년 US여자오픈을 제패한 박세리의 ‘맨발 샷’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미셸 위의 샷은 멀지 않은 해저드에 또 떨어졌고, 그는 이 샷 후 2벌타를 받아야 했다. ‘물가를 빠져나오면서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클럽으로 지면을 디뎠던(본인 주장)’ 탓이다.

당시 골프규칙은 경기자가 해저드 구역에서 클럽으로 지면이나 물, 주변 풀 등에 접촉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 때문에 공동 2위를 달리던 미셸 위는 공동 6위로 대회를 마쳤다. 2위와의 상금 차가 11만달러(약 1억2400만원)에 달했다.

같은 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헤리티지 연장전에선 당시 세계랭킹 166위 브라이언 데이비스가 다 잡았던 생애 첫 승을 놓쳤다. 해저드 구역에서 스윙해 그린에 공을 올렸지만 “백스윙 때 클럽헤드가 꺾인 갈대를 건드린 것 같다”고 고백했고, 대회 주최 측이 이를 받아들여 2벌타를 부과한 것이다. 우승컵은 짐 퓨릭(미국)이 가져갔고 데이비스는 준우승에 그치면서 수십만달러를 날렸다.

골프 규칙은 엄혹하다. ‘그게 무슨 규칙 위반일까’ 싶은 상황에도 벌타를 매기는 경우가 많다. 내년부터는 이런 일의 상당수가 사라진다.

해저드 풀, 지면 건드려도 ‘오케이’

모래 닿아도 된다?…착각하기 쉬운 벙커샷 룰, '벌타 지뢰밭' 그대로
상습 ‘벌타 사건’ 구역인 해저드와 벙커 관련 규칙 일부가 비교적 완화됐다. 샷을 하기 전후 클럽이 지면이나 수면, 풀 등에 닿아도 벌타를 매기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해저드를 ‘페널티 구역’으로 명칭을 바꾸고 내년부터 이 같은 새 규칙을 실전에 적용한다. 페널티 구역에서의 샷을 페어웨이나 러프에서의 샷과 사실상 똑같은 조건에서 할 수 있게 됐다. 공을 움직이지 않는 전제에서 공 주변의 루스 임페디먼트(나뭇가지, 플라스틱 조각 등 움직일 수 있는 장애물)를 접촉할 수 있고 치울 수도 있다. 이전엔 무심코 닿기만 해도 2벌타를 매겼던 경우다.

하지만 공 뒤의 풀더미를 클럽 헤드로 누르거나 여러 차례 접촉해 샷 조건을 개선하는 행위는 여전히 금지된다. 풀을 꺾거나 뽑아내서도 안 된다.
모래 닿아도 된다?…착각하기 쉬운 벙커샷 룰, '벌타 지뢰밭' 그대로
벙커 모래 건드리기는 여전히 주의해야

벙커 관련 조항은 여전히 주의해야 할 점이 꽤 많다. 해저드와 똑같이 루스 임페디먼트를 제거할 수 있게 된 건 확연히 달라진 부분이다. 하지만 모래를 건드릴 수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우선 동반자의 샷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클럽을 지팡이처럼 짚어 벙커 모래를 건드린 경우는 벌타가 없다. 치지 않는 클럽을 단순히 모래에 던져놓거나 실수로 클럽을 떨어뜨리는 경우에도 벌타를 매기지 않는다. 벙커샷을 한 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클럽으로 모래를 내려친다 해도 여전히 벌타는 없다.

다만 공이 멀리 나가지 못하고 벙커 안으로 다시 굴러들어온 이후라면 화가 나더라도 모래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뜻하지 않게 공 주변을 내리쳐 자칫 라이개선 행위 등의 이유로 벌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을 벙커 밖으로 확실히 꺼낸 이후라면 모래를 접촉해도 상관없다.

새로운 구제 조항도 생겼다. 벙커에서 탈출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벙커 밖에서 샷을 할 수 있게 됐다.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한 후 2벌타를 받아야 한다. 프로에서는 사용 빈도가 높지 않을 전망이다.

경기 내용과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공 앞뒤 모래에 클럽 헤드 놓기 △연습 스윙으로 모래 쳐보기 △백스윙하다 모래 건드리기 △모래의 습도, 강도, 점도, 입자 굵기 등의 성질을 클럽이나 고무래, 손 등으로 테스트하기 등은 여전히 금지된다.

김용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경기위원은 “벙커 관련 규정은 여전히 엄격성을 유지한 구석이 곳곳에 눈에 띈다”며 “아마추어 골퍼와 프로 모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