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더 CJ컵@나인브릿지’ 우승자 브룩스 켑카(미국)는 자신의 골프를 ‘원시인(caveman) 골프’라고 칭했다. 그는 경기에 집중해 정신상태가 무아지경에 다다르고 이후엔 공을 찾고 치는 데만 열중한다. 덕분에 버디를 잡아도, 보기를 기록해도 표정 변화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남자 골프에 켑카가 있다면 여자 골프엔 ‘골프 여제’ 박인비(30)가 있다. 무표정에서 오는 침착함 때문인지 둘은 유독 큰 무대에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켑카는 PGA투어 5승 중 3승을 메이저대회에서 거뒀다.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19승 중 7승이 메이저 타이틀이다.

켑카와 박인비처럼 내면의 화를 다스려 표출하지 않는 것이 정말 골프에 도움이 될까. 박인비의 심리상담을 담당했던 스포츠심리상담가 조수경 조수경스포츠심리연구소 소장은 화를 표출하지 않는 것이 멘탈 트레이닝이 충분히 되지 않은 아마추어 골퍼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박인비
박인비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에겐 ‘죄책감 포인트’라는 것이 있다. 자신이 화가 나 밖으로 표출하고 이를 남도 인정하는 단계에 다다르면 스스로 ‘화를 참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줘 찰나의 부정적인 생각과 맞물린다. 죄책감과 부정적인 생각이 결합하면 경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선수들은 수만 번, 수십만 번의 경험으로 이 같은 죄책감을 이겨내지만 아마추어 골퍼에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조 소장에 따르면 켑카와 박인비는 타고난 성향과 자라온 환경에 따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필드에서도 실천하는 유형이다. 반면 충분한 경험과 트레이닝이 된 프로 선수라면 되레 감정을 숨기는 것이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게 조 소장의 설명이다.

조 소장은 “큰 무대에서 강한 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서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그 누구보다 필드 위에서 역동적이고 감정적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선수였다”며 “활동적인 사람은 오히려 우울해지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