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만에 ‘우승컵 입맞춤’ > 이정은이 2일 강원 춘천 제이드팰리스GC에서 열린 KLPGA투어 메이저 대회 한화클래식을 제패한 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KLPGA 제공
< 1년 만에 ‘우승컵 입맞춤’ > 이정은이 2일 강원 춘천 제이드팰리스GC에서 열린 KLPGA투어 메이저 대회 한화클래식을 제패한 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KLPGA 제공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한화클래식(총상금 14억원)은 ‘지옥러프’로 악명 높다. 대회장인 강원 춘천의 제이드팰리스GC(파72·6758야드)는 나흘간 20㎝가 넘는 러프로 뒤덮인다. 러프는 경기 내내 계속 자란다. 티샷한 공이 이 구역으로 들어가면 더블 보기, 트리플 보기를 각오해야 한다. 공을 페어웨이로 빼내려다 반대편 러프로 보내거나 ‘플라이어’(공과 클럽페이스 사이에 풀이 끼어 평소보다 공이 멀리 날아가는 샷)가 나는 탓에 선수들은 티샷과 어프로치샷(그린을 공략하는 샷)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지한솔(22), 김자영(27), 이지현(22) 등 KLPGA투어 챔프들은 물론 김효주(23), 장하나(26), 노무라 하루(26) 등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챔프들까지 3라운드 그린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예선탈락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지난해 E1채리티오픈 챔피언 이지현은 1, 2라운드 이틀 동안 18오버파를 치고 짐을 싸야 했다.

◆화려하게 돌아온 ‘핫식스’

‘핫식스’ 이정은(22)이 이 같은 난적을 화끈하게 제압했다. 이정은은 2일 끝난 한화클래식 최종일 4라운드에서 버디 6개, 보기 2개를 묶어 4언더파 68타를 적어냈다. 최종합계 13언더파 275타를 기록한 이정은은 9언더파를 친 2위 배선우(24)를 4타 차로 밀어내고 시즌 첫 승을 올렸다. 지난해 9월 OK저축은행박세리인비테이셔널 이후 꼭 1년 만의 우승이자 통산 5승째를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우승상금 3억5000만원을 받은 이정은은 시즌 총상금을 6억7625만원으로 늘려 상금 순위를 9위에서 3위로 끌어올렸다.

이정은은 올해 해외투어를 틈틈이 뛰었다. “더 큰물에서 꿈을 펼치겠다”는 야망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승을 올리며 다승 대상 상금왕 등 주요 부문 전관왕을 휩쓸며 쌓은 자신감이 그의 시선을 해외투어로 끌어당겼다. 올 시즌 KLPGA투어 19개 대회 중 7개 대회를 건너뛰는 대신 미국과 일본 투어를 오갔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LPGA투어 우승 문턱은 높았고, 긴 여행으로 쌓인 피로가 샷감과 멘탈을 동시에 흔들었다. 지난 1년간 KLPGA에서 준우승만 다섯 번 했다. 그러는 사이 라이벌 최혜진(19)과 오지현(22), 이소영(21), 장하나 등이 2승씩을 올리며 그린을 점령했다. 그의 자리는 없었다. 이정은은 “시즌 내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했는데, 꿈이었던 메이저 우승으로 아쉬움이 다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KLPGA ‘다자경쟁’ 구도로 재편되나

이날 우승경쟁은 시즌 3승째를 정조준한 3라운드 단독 선두 이소영과 1타 차 2위 이정은의 매치플레이처럼 흐를 것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승부는 얼마 안 가 이정은의 독무대로 돌변했다. 이소영이 2, 4, 5, 8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스스로 무너진 사이 이정은은 버디 2개를 침착하게 잡아냈다. 타수 차가 전반에만 4타로 벌어졌다. 그 틈을 3위 그룹이던 배선우와 오지현, 이승현(27)이 비집고 올라왔다. 하지만 이정은의 독주를 막아서기엔 힘이 부쳤다. 한때 6타 차까지 추격자들을 따돌렸던 이정은도 후반 보기 2개를 내주며 모처럼의 우승컵 앞에서 흔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2m 버디 퍼트를 꽂아 넣으며 나흘간의 긴 승부를 마무리지었다. 그는 마지막 버디 퍼트를 성공한 뒤 환호하지도,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시즌 내내 그를 옥죄었던 응어리가 울음으로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선 홀인원은 물론 앨버트로스까지 나오는 등 화제가 풍성했다. 이정민(27)이 4라운드 15번홀(파3)에서 홀인원을 터뜨려 1억원이 넘는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고, 초청선수 넬리 코르다(미국)가 2라운드 18번홀(파5)에서 두 번의 샷 만에 공을 홀에 집어넣어 앨버트로스를 기록했다. 드라이버로 285야드를 날린 뒤 267야드가 남은 상황에서 3번 우드로 친 샷이 그대로 홀로 빨려들어갔다. 넬리가 6위(5언더파), 언니 제시카 코르다가 12위(3언더파)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올 시즌 상금과 대상 포인트, 평균 타수, 신인상 포인트 등 주요 부문 1위에 올라 있는 최혜진이 3라운드를 마치고 발목 부상을 이유로 기권해 하반기 부문별 순위가 요동칠 전망이다. 최혜진은 1라운드 이븐파, 2라운드 2오버파, 3라운드 4오버파로 중간합계 6오버파를 치고 있었다. 3라운드를 마치고 기권하면 상금은 못 받지만 타수 등 경기 기록은 인정된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