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허리 수술, 약물에 취해 차에서 잠들다 적발돼 퀭한 눈으로 ‘머그샷’(범죄용의자 구금 과정에서 촬영하는 얼굴 사진)이 찍힐 때만 해도 타이거 우즈(미국)의 부활을 점치는 이가 얼마나 있었을까. 전문가들도 그의 은퇴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실었다. 우즈 스스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모르겠다”며 “메이저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행운일 것”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23일(한국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앵거스의 카누스티 골프링크스(파71·7402야드)에서 끝난 남자골프 메이저대회 디오픈(브리티시오픈)은 황제의 부활이 임박했음을 확인한 무대였다. 우즈는 15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거의 잡았다가 아쉽게 놓쳤다. 그는 전반 9개 홀이 끝난 뒤 단독 선두로 나섰다. 최종 순위는 5언더파 279타 공동 6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우즈가 우승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우승에 근접한 경기력이었다.

샘과 찰리, 우즈를 다시 뛰게 한 원동력

우승에 대한 갈망으로 활활 타올랐던 예전의 우즈였다면 ‘퍼펙트 게임’을 놓친 자신에게 불같이 화를 냈을 법도 했다. 더군다나 이날 대회장에 집결한 구름 관중 가운데 일부는 우즈가 다운스윙할 때를 노려 소리를 지르는 등 그의 기분을 건드리는 요소가 꽤나 많았다. 하지만 우즈는 “(우승을 놓친 게) 당분간 꽤 속이 쓰릴 것 같다”고 웃어 넘겼다.

그가 다시 필드로 복귀하게끔 동기를 부여해준 그의 딸 샘(11·왼쪽)과 아들 찰리(9·오른쪽)의 역할이 컸다. 부상에서 돌아온 뒤 갤러리와 자주 소통하는 등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다.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우즈가 목이 메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에게 ‘정말 최선을 다했고 너희가 끝까지 노력한 아빠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저를 꼭 끌어 안아줬습니다. 아이들은 이 대회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고 내가 다시 우승 경쟁을 할 수 있게 돼 얼마나 행복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그동안 봐온 것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전부였습니다. 많은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아이들은 그 순간의 기억이 없으니까요. 아이들이 (우승 경쟁을 펼치는 등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알고 있다는 건 내겐 정말 특별한 일입니다.”

춘추전국시대 PGA투어에 우즈까지 가세

한층 순해진 호랑이지만, 필드에서 그의 발톱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지난 2년간 메이저대회를 TV로 구경만 한 그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톱10 진입에 성공했다. 그가 메이저대회 상위 10명 안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13년 디오픈(공동 6위) 이후 5년 만이다.

우즈의 부활은 더스틴 존슨과 조던 스피스, 저스틴 토머스(이상 미국) 등 차세대 황제들의 경쟁으로 좁혀지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결 구도에도 균열을 일으킬 전망이다.

이번 대회 2라운드까지 이븐파에 그친 그는 3라운드에서 5타를 줄이고 최종 라운드에선 한때 선두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다. 비록 11번홀과 12번홀(파4)에서 각각 더블보기와 보기로 무너졌으나 한동안 경쟁에서 벗어나 있던 우즈의 복귀 과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번 디오픈에는 약 17만2000명의 갤러리가 모여 카누스티 골프링크스에서 열린 디오픈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웠다. 대회 주최 측은 대부분 우즈를 보기 위한 관중이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그와 경쟁하는 선수들은 구름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도 이겨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즈는 대회 후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지난주보다 21계단 뛴 50위에 올라 다음달 3일부터 나흘간 미국 오하이오주 애크런의 파이어스톤 골프장에서 열리는 2018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출전권을 확보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