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마이클 김(25·한국명 김상원)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자신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생애 처음으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3라운드까지 5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린 날이었다.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우승할 것 같은 기대, 또 그만큼의 불안이 뒤섞여 가슴이 쿵쾅거렸다. “100만 가지 생각이 들 것 같았어요. 잡념과 긴장을 없애려 윔블던 테니스 중계를 봤죠.”

뜬눈으로 밤을 새운 그는 이튿날인 15일 마지막 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5개를 잡았다. 성적표에 27언더파가 찍혔다. 우승을 확신한 그가 18번홀 근처를 둘러봤다. 샌디에이고에서 예고 없이 날아온 아버지, 어머니, 형 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84번의 대회를 기다려준 가족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디오픈행 마지막 티켓 보너스로 챙겨

마이클 김이 PGA투어 첫 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5일 미국 일리노이주 실비스의 TPC 디어런(파71·7268야드)에서 막을 내린 존디어클래식(총상금 580만달러)에서다. 첫날 8언더파를 치며 시동을 건 그는 2, 3라운드에서 연속 7언더파를 적어낸 뒤 마지막 4라운드에서도 5언더파를 보태 8타 차 우승을 완성했다.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 조엘 다먼(미국) 등 2위 그룹 네 명이 19언더파를 적어냈다.

마이클 김이 기록한 8타 차 우승은 PGA투어 올 시즌 최다 타수 차 타이 기록이다. 더스틴 존슨(미국)과 몰리나리가 앞서 같은 타수 차로 우승했다. 시즌 최다 버디(30개)도 그가 세운 새 기록.

우승상금 104만4000달러(약 11억원)를 받은 그는 2년간의 투어 출전권과 메이저대회인 디오픈 출전권을 함께 손에 쥐었다. 156번째 마지막 디오픈 출전 티켓이었다. 대회 우승상금은 그가 6년여 프로 생활에서 번 모든 상금(약 30만달러)의 세 배에 달하는 거금. 그는 “다섯 타 차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공격적으로 하자고 다짐했는데 첫 세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서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스타 동기’들보다 늦게 핀 골프영재

1993년 한국에서 태어난 마이클 김은 TV부품사업을 하던 아버지(김선득)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간 2000년 처음 골프를 배웠다. 고교(토리파인고)와 대학 때는 전국 대회를 휩쓸던 ‘93년생 황금세대’ 중 한 명이었다. ‘차세대 황제’로 꼽히는 저스틴 토머스, 조던 스피스(이상 미국) 등이 골프를 같이 한 동기들이다. UC버클리 재학시절인 2013년엔 동기들보다 앞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대회에 일곱 번 나가 4승을 거둬 우수선수에게 주는 ‘잭 니클라우스 상’을 받았고, 같은 해 미국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대학생 골프 선수에게 주는 해스킨 어워드도 차지했다. 그해 출전한 US오픈에서 공동 17위에 올라 아마추어 부문 1위를 기록했다.

2013년 프로로 전향한 이후가 문제였다. 마이클 김은 “잘나가는 동기들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늘 들었다”고 털어놨다.

대회 한 달 전 코치 바꾸는 극약처방

우승까지 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2부 투어를 병행하며 출전한 2014년 2개 대회는 모두 커트 탈락했다. 두 번째 시즌인 2015~2016 시즌에는 공동 11위(바바솔챔피언십)가 최고 성적이었다. 2016~2017 시즌 공동 3위(세이프웨이오픈)에 이름을 올리며 고점을 높이는 듯하던 성적은 올 시즌 다시 흔들렸다. 22개 대회에 출전해 14번 커트 탈락을 당했다. 공동 15위가 가장 좋은 성적. 이번 대회에 앞서 3개 대회 연속 예선 탈락이라는 아픔도 맛봤다. 그는 “뭔가 변화가 필요했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8년간 동고동락한 스윙 코치를 바꾼 게 한 달 전. 새 코치인 존 틸러리는 “드라이버 샷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오른쪽으로 계속 미스를 했다. 샷을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였는데, 이번 대회에 앞서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54.53%(183위)에 불과했던 드라이버 정확도가 82.14%(공동 2위)로 수직 상승했다. 샷이 펴지자 280야드대였던 비거리도 290야드대로 늘었다. 틸러리는 “잠재력이 큰 친구”라며 “아직 보여줄 게 더 많다”고 마이클 김을 치켜세웠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