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은 드라이버 정확도가 KLPGA 투어 3위, 그린 적중률이 7위에 올라 있는 정교한 샷의 달인이다. ‘또박또박’ 골프로 아시아나항공오픈을 제패한 김지현이 8일 우승을 확정한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 물 세례를 받고 있다. /KLPGA 제공
김지현은 드라이버 정확도가 KLPGA 투어 3위, 그린 적중률이 7위에 올라 있는 정교한 샷의 달인이다. ‘또박또박’ 골프로 아시아나항공오픈을 제패한 김지현이 8일 우승을 확정한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 물 세례를 받고 있다. /KLPGA 제공
중국 산둥성의 ‘명소’ 웨이하이포인트CC(파72)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졌다. 반도의 황홀한 풍광 뒤에 감춰진 무시무시한 절벽 해저드가 선수들의 샷을 수시로 집어 삼켰다. 종잇장을 구긴 듯한 그린은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성난 발톱처럼 선수들의 퍼팅을 흔들었다.

절벽 해저드 잠재운 ‘또박이 샷 달인’

괴물을 잠재운 건 ‘차분함의 대명사’ 김지현(27·롯데)이었다. 김지현은 8일 웨이하이포인트C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아시아나항공오픈(총상금 7억원)에서 사흘간 최종합계 11언더파를 기록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해 6월 롯데칸타타 이후 13개월 만의 우승이자 시즌 첫 승이다.

정교함이 빛을 발했다. KLPGA 투어의 대표적 ‘또박이’ 김지현은 마지막 날 버디 5개를 잡아내는 등 사흘간 버디 15개를 쓸어모아 까다로운 웨이하이의 심술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보기는 사흘간 4개만 내줬다. 2위 조정민(24)을 1타 차로 따돌리며 통산 4승째를 기록한 김지현은 우승 상금 1억4000만원과 퍼스트 클래스 항공 티켓 2장을 부상으로 받았다. 그는 “한 번도 안 가본 프랑스 파리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막판까지 예측불허 ‘안갯속 승부’

김지현은 2라운드에서 6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는 등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막판 지한솔과 조정민 등 후배들의 거센 추격을 허용하며 위기에 몰렸다. 지한솔의 추격이 매서웠다. 후반 10번홀. 1타 뒤지던 지한솔이 3m 퍼트를 집어넣은 반면 김지현이 이보다 짧은 2.5m 퍼트를 놓치면서 공동선두를 허용했다. 예측불허의 안갯속 승부가 이어졌다. 11번홀에서 지한솔의 3m 버디 퍼트가 홀 속으로 사라졌다. 선두가 지한솔로 뒤집혔다. 그러자 김지현의 반격이 불을 뿜었다. 12번홀 버디를 기록하며 다시 공동선두를 탈환한 것이다.

반면 지한솔은 막판으로 갈수록 티샷의 진폭이 심해졌다. 결정적인 실수가 14번홀에서 터져 나왔다. 드라이버 티샷이 오른쪽 경사지를 타고 굴러가다가 오비(아웃오브 바운즈) 구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반면 김지현은 이 홀에서 홀 3m 근처에 공을 떨궈 10언더파로 달아났다. 2타 차 단독 선두. 지한솔은 이 홀에서 2타를 잃어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선수가 조정민이었다. 챔피언조보다 한 홀 앞서 경기한 조정민이 15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김지현과 공동선두를 달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살얼음 승부가 연출됐다.

하지만 김지현이 한 걸음 빨랐다. 조정민이 버디를 추가하지 못하는 사이 17번홀에서 약 4m 버디 퍼트를 추가하며 1타 차 선두에 올라섰고, 18번홀에서 귀중한 파를 지켜 우승을 확정했다. 조정민은 18번홀에서 마지막 버디 퍼트 기회를 놓치면서 김지현과 연장에 갈 기회를 아깝게 날렸다.

김지현은 지난해 11월 ADT캡스 대회에서 지한솔과 마지막 날 우승 경쟁을 펼쳐 지한솔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당시의 아쉬움을 설욕했다. 막판에 흔들린 지한솔은 6언더파 공동 5위로 경기를 마쳤다. 배선우(24)가 9언더파 단독 3위, 최혜진(19)이 7언더파 단독 4위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대상 포인트 1위가 최혜진에게 넘어갔다. 이 대회 전까지 대상 포인트 부문 1위였던 오지현(22)이 이븐파 공동 19위로 주춤했기 때문이다. 최혜진은 대상 포인트와 신인상 부문에서 모두 1위가 됐다.

오버파 우수수 ‘챔프들의 굴욕’

웨이하이포인트CC는 6155야드로 거리가 비교적 짧다. 하지만 좁은 페어웨이와 곳곳에 입을 벌린 해저드, 무릎까지 오는 깊은 러프가 선수들을 괴롭혔다. 한국과 중국, 태국 등 78명의 다국적 선수는 사흘간 ‘오버파 굴욕’을 피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언더파를 친 선수가 18명에 불과했다. 20오버파 이상을 적어낸 희생자도 13명이나 됐다. 싱가포르의 아만다 탄은 첫 라운드에서 27오버파를 쳤다. 오버파를 친 선수 중에는 장하나(13오버파), 백규정(27오버파), 안시현(11오버파) 등 ‘스타급 챔프’들이 포함됐다.

펑산산이 2언더파 공동 14위에 올라 체면을 세웠다. KLPGA는 중국에서 열린 21차례 대회에서 모두 우승컵을 가져가게 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