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이 10일 제주 엘리시안 컨트리클럽 파인·레이크 코스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에쓰오일 챔피언십에서 최종합계 17언더파 199타로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KLPGA 제공
이승현이 10일 제주 엘리시안 컨트리클럽 파인·레이크 코스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에쓰오일 챔피언십에서 최종합계 17언더파 199타로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KLPGA 제공
제주도 골프장의 날씨는 예측하기 어렵다. 골프대회 코스책임자가 홀 위치를 결정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도 날씨다. 점수가 너무 잘 나와도, 안 나와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진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경기위원장은 “사흘간의 라운드 중 하루 정도는 악천후가 닥칠 것으로 예상해 경기 초반 홀을 평이한 곳에 꽂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퍼팅에 강한 선수가 한결 유리하게 된다. 드라이버샷이나 아이언샷, 어프로치 등의 실력이 큰 변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10일 막을 내린 KLPGA 투어 에쓰오일 챔피언십(총상금 7억원, 우승상금 1억4000만원)은 퍼팅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한 대회다. ‘퍼팅달인’ 이승현이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퍼팅달인’의 완벽한 그린 지배

이승현(27·NH투자증권)은 이날 제주 엘리시안 제주 컨트리클럽(파72·6604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 3라운드에서 8언더파 64타를 적어냈다. 18홀 내내 타수를 한 번도 잃지 않고 버디만 8개를 쓸어담았다. 최종합계 17언더파 199타를 기록한 이승현은 14언더파를 친 이정은6와 박결을 3타 차로 따돌리고 통산 7승을 완성했다. 지난해 11월 하이트진로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메이저 챔프에 오른 지 7개월 만의 우승이자 올 시즌 첫 승이다.

이승현은 대회 전통에 따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동 준우승을 했지만 백카운트 규정(동타자의 순위를 가릴 때 경기 후반부 성적을 더 높이 평가하는 제도)에 따라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은 이정은이 파에 그친 박결을 제치고 은메달을 가져갔다. 박결은 동메달을 차지했다. 지난해 대회에서 김지현(한화)과 5차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한 이정은은 올해 설욕을 별렀지만 뜻을 이루진 못했다. 김지현은 이날 4타를 덜어내 12언더파 공동 5위에 자리했다. 생애 첫 우승에 도전했던 박결은 세 번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승현은 사흘 내내 보기 없는 무결점 경기를 펼쳤다. KLPGA 투어에서 지금까지 보기 없이 우승한 54홀 대회는 이번까지 다섯 번이다. 2008년 우리투자증권레이디스챔피언십(신지애), 2016년 E1채리티오픈(배선우), 2016년 보그너MBN여자오픈(박성현), 2017년 ADT캡스챔피언십(지한솔)이 무결점 챔피언을 탄생시켰다.

이날 2번홀(파4)에서 버디 사냥의 포문을 연 이승현은 3번(파3), 4번(파4), 5번(파5), 6번홀(파4)까지 잇달아 버디퍼트를 홀에 꽂아 넣었다. 3번홀과 12번홀(파3)에서는 12m와 15m에 달하는 긴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퍼트는 위기 탈출과 노보기 플레이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8번홀(파4)에서 5m에 달하는 긴 파퍼트를 홀 한가운데로 정확히 떨어뜨렸다.

이승현은 “원래 엘리시안 대회장과는 궁합이 안 맞았는데 이번엔 퍼트라인이 잘 보였다”며 “골프공 폭만 한 검은색 선이 잔디 위에 길처럼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승현은 KLPG투어의 대표적인 ‘짤순이’다.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232.4야드로 투어 110위다. 하지만 동료선수들이 ‘퍼달(퍼팅달인)’ ‘퍼귀(퍼팅귀신)’라고 부를 정도로 퍼팅을 잘한다. 2010년 투어에 데뷔한 이래로 평균 퍼팅 랭킹이 4위 밑으로 내려가본 적이 없다. 2013년에는 평균퍼팅 1위 자리도 꿰찬 바 있다.

◆5490만원짜리 홀인원 횡재

이날 대회는 당초 낙뢰와 강풍, 소나기를 예상하고 홀을 평이한 곳에 배치했다. 하지만 날씨는 화창했다. 곳곳에서 줄버디쇼가 펼쳐졌다. 사흘 동안 991개의 버디가 쏟아지면서 본선 진출 68명 중 65명이 언더파를 쳤다. 바람까지 잔잔해 선수들은 마음껏 그린을 요리했다. 제주도 특유의 그린 경사 착시효과인 ‘한라산 브레이크’도 의미가 없었다. 박결은 “(한라산 브레이크에 대한) 정보가 많이 축적돼 있다는 점과 선수들의 실력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게 겹친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버디가 나온 대회는 2016년 E1채리티오픈으로, 사흘간 1183개의 버디가 쏟아졌다.

박소혜는 이날 12번홀(파3)에서 홀인원을 터뜨리는 행운을 잡았다. 시가 5490만원짜리 기아자동차 K9 승용차가 걸린 홀이었다. 이 덕분에 갤러리 한 명도 소형 승용차 한 대의 주인공이 됐다.

제주=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