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력은 이미 최정상…분노 조절 못하는 성품이 문제
골프 세계랭킹 4위 '영건'람 "물건은 물건인데…"
"물건은 물건인데…"

스타에 목마른 미국프로골프(PGA)투어가 스페인 출신 '영건' 욘 람(23)을 보는 시각은 기대와 아쉬움, 그리고 우려가 골고루 섞여 있다.

람은 최근 유럽프로골프투어 스페인오픈에서 정상에 올라 프로 통산 5번째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PGA투어에서는 올해 커리어빌더 챌린지 우승을 포함해 2승을 올렸다.

놀라운 것은 람이 프로로 전향한 지 아직 2년이 되지 않은 스물세살의 어린 선수인데다 5승째를 거둔 스페인오픈은 프로 선수로 출전한 45번째 대회라는 사실이다.

람은 진입 장벽이 높은 PGA투어도 너무나 손쉽게 승선했다.

2016년 6월 프로 전향 직후 초청 선수로 출전한 PGA투어 데뷔전 퀴큰론스 내셔널에서 3위를 차지하더니 이어진 캐나다오픈에서 준우승으로 불과 4개 대회만에 가볍게 2017년 투어 카드를 확정했다.

이렇게 수월하게 PGA투어 카드를 손에 넣은 선수는 필 미컬슨(미국)이나 타이거 우즈(미국) 말고는 없다시피 하다.

2017년 사실상 첫 시즌을 맞은 그는 1월에 파머스 인슈런스 오픈을 제패했다. 프로 전향 후 13번째 대회였다. 137위였던 세계랭킹은 46위로 뛰어 메이저대회와 특급 대회 출전권을 보장받았다.

PGA투어 두번째 우승을 거둔 올해 커리어빌더 챌린지는 프로 전향 후 38번째 대회였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애리조나주립대 재학 시절 거둔 11승은 미컬슨의 16승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승수다.

최우수 아마추어 선수에게 주는 벤 호건 상을 2년 연속 수상했는데 1990년 제정된 이 상을 두번 받은 선수는 람 혼자다.

프로로 전향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세계랭킹 2위까지 올랐던 람은 지금은 더스틴 존슨, 저스틴 토머스, 조던 스피스에 이어 세계랭킹 4위다.

천재성과 잠재력, 그리고 현재 경기력으로는 세계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할 토대는 이미 든든하다는 얘기다.

6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라 강의실에서 눈만 껌뻑이던 그는 지금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그가 스페인에서 태어나 자란 스페인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착각하는 팬이 많은 이유다.

영어가 어눌한 외국 선수에게 좀체 정을 주지 않는 미국 골프팬들에게 람의 스페인 국적은 큰 문제가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의 품성이 문제다. 스포츠 스타는 실력 못지않게 품성이 중요하다. 품성을 갖추지 못하면 팬들의 사랑을 받기 힘들다.

람은 특히 불같은 성격을 다스리지 못해 여러 번 사고를 쳤다.

작년 US오픈 2라운드는 람의 품성을 세계에 알린 계기였다.

14번홀에서 칩샷 실수로 보기를 적어낸 그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했다. 욕설을 내뱉더니 웨지를 패대기치고선 발로 걷어찼다.

15번홀 티박스에선 볼을 팽개치는가 하면 사인보드를 주먹으로 쾅쾅 쳤다. 그는 끝내 컷 탈락했다. 그는 당시 세계랭킹 10위로 우승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다.

선수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면 일시적으로 분노나 좌절, 실망감을 표현하지만 람의 분노 조절 장애 수준은 상상 이상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은 그때 알게 됐다.

지난 2월 피닉스오픈에 출전한 람은 우승 기회가 있었지만, 최종 라운드 15번홀에서 웨지 실수를 하자 또다시 통제 불능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욕설과 함께 웨지를 내던지더니 결국 1오버파 72타를 쳐서 11위로 추락했다.

람은 또 지난해 아이리시오픈 최종 라운드 6번홀에서 마크를 옮겼다 원위치하면서 원래 있던 장소보다 더 가깝게 내려놨다가 구설에 올랐다. 중계방송을 보던 시청자라면 누구나 알아챌 만큼 명백한 반칙이었지만 이른바 '렉시룰' 덕분에 벌타를 모면했다.

이런 구설은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람의 평판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품성도 문제지만 람은 유독 메이저대회에 약하다는 점도 스타로 발돋움하는 데 걸림돌이다.
람은 풀시드 첫해였던 지난해 우승 한번에 준우승과 3위를 각각 두번씩 했다. 21개 대회에서 11차례나 톱10에 입상했다.

그러나 메이저대회 성적은 형편없었다. 지난해에는 27위(마스터스), 컷 탈락(US오픈), 44위(디오픈), 58위(PGA챔피언십) 등 세계 최정상급 선수다운 성적이 없었다. 올해 마스터스 4위로 간신히 체면은 세웠을 뿐이다.

같은 20대지만 토머스, 스피스, 그리고 매킬로이는 모두 메이저대회 우승 경력이 있다.
세계랭킹 5걸 가운데 메이저대회 우승이 없는 선수는 람 뿐이다.

스타 플레이어가 차고 넘치는 PGA투어지만 스타는 많을수록 좋다는 점에서 이런 람의 한계는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전해온 람의 스페인오픈 우승 소식에 미국 골프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