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질 듯하면서도 끈질기게 파 세이브…기어이 메이저 우승


"와, 독하다 독해."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ANA 인스퍼레이션(총상금 280만 달러) 3, 4라운드와 연장전을 지켜본 많은 국내 골프팬들이 혀를 내둘렀다.

이틀에 걸친 8차 연장 끝에 '골프 여제' 박인비(30)를 꺾고 우승한 페르닐라 린드베리(32·스웨덴)를 보면서였다.

2010년 LPGA 투어에 입문한 린드베리는 이 대회 전까지 192차례 대회에 출전해 한 번도 우승이 없는 선수였다.

당연히 시즌 첫 메이저 대회에서 그를 우승 후보로 지목한 이는 거의 없었고 1, 2라운드에서 린드베리가 선두를 달렸을 때만 하더라도 '저러다 말겠지'하는 분위기였다.

3라운드 중반을 넘어가면서 린드베리와 동반 플레이를 펼친 박성현(25)이 2타 차 단독 선두로 간격을 벌려가자 국내 팬들은 '그럼 그렇지'라며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무너질 것 같던 린드베리는 그야말로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파 세이브를 해가며 버텼다.

거의 매 홀에서 2, 3m 거리의 파 퍼트를 남기는 패턴이 반복됐지만, 그때마다 린드베리는 퍼트를 넣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히려 3라운드 중반 이후 2타 차 리드까지 잡았던 박성현이 이후 타수를 잃으며 무너졌다.

메이저 7승에 빛나는 박인비도 8차 연장까지 치르며 몇 차례 승리 기회가 있었지만 린드베리의 퍼트가 '또박또박' 들어가는 바람에 그때마다 다음 연장 홀로 향해야 했다.

속이 상한 일부 국내 팬들은 '린드베리가 너무 플레이를 느리게 하는 바람에 동반 선수들에게 민폐 수준'이라며 지적했지만 어찌 됐든 우승컵은 린드베리 품에 안겼다.

그는 LPGA 투어는 물론 2부 투어나 유럽여자프로골프 투어(LET)에서도 한 번도 우승이 없었던 선수였다.

우승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모든 대회를 다 합쳐 250개 대회 정도에서 우승이 없었다'는 말도 나왔다.


린드베리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나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며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경기에 임하는 데 전념했다"고 말해 다시 한 번 국내 팬들의 속을 뒤집어 놨다.

쉽지 않은 퍼트를 거의 놓치지 않은 비결에 대해서는 "2m 정도 되는 퍼트 연습을 많이 했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8차 연장에서는 8m 가까운 버디 퍼트에 성공하며 길었던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린드베리는 "박인비도 워낙 퍼트가 좋은 선수였기 때문에 사실 그것을 넣고 나서도 9차 연장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날 우승으로 LPGA 투어 올해의 선수 부문 1위에 오른 린드베리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했고, 박인비를 상대한다는 압박감을 이겨냈으니 이제 앞으로 제 실력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린드베리는 또 이날 부모님이 계속 따라다니고, 약혼자인 대니얼 테일러가 캐디로 함께 해 의미가 남달랐다.

그는 "부모님이 저에게 골프를 소개해주셨는데 메이저 우승 현장에 함께 해 더욱 기쁘다"며 "대니얼은 골프 코스 안팎에서 많은 순간을 함께했는데 앞으로도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만 30세를 넘겨 첫 우승을 맛본 그는 "고등학교 때 메이저 우승에 대한 목표를 적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하며 "그동안 계속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했는데 이번에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내건 그는 "오늘 많은 갤러리가 오셨는데 아마 '언더독'인 저를 더 응원하지 않았을까.

오늘 우승으로 저의 팬도 더 늘어났을 것"이라고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