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인 듯한데 누구지?”

제니퍼 송(29·사진)이 한국 골프팬들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2일 오전(한국시간) 끝난 올 시즌 첫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총상금 280만달러·약 29억6000만원)에서 ‘골프 여제’ 박인비(30·KB금융그룹), 무명 돌풍 페르닐라 린드베리(32·스웨덴)와 치열한 연장 혈투를 벌이는 등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연장 3차전에서 버디를 잡아낸 박인비와 린드베리에 밀려 가장 먼저 짐을 쌌지만 안정적인 스윙과 깔끔한 매너를 보이며 위기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가 관심을 끌었다.

◆8년을 숨어 있던 ‘흙 속의 진주’

1989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양친이 모두 한국 사람인 재미 동포다. 한국 이름은 송민영. 조선해양공학자인 송무석 홍익대 교수(57)가 부친이다. 유학을 끝낸 부모님을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인 2000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대전국제학교에서 고교 시절까지 보낸 뒤 2008년 다시 미국으로 가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학업과 골프를 이어갔다.

제니퍼 송은 2011년 LPGA투어에 데뷔해 올해로 프로 8년차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승이 없어 무명으로 분류된다. 아마추어 때는 ‘글로벌급’ 최강 골퍼로 통했다. 대전국제고를 다니던 2006년과 2007년엔 국내 아마추어 대회를 제패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로도 뽑혔다. 2008년 골프 특기로 유학을 간 뒤 이듬해인 2009년에는 US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과 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 대회를 모두 제패하며 ‘특급 유망주’로 관심을 모았다.

프로 전향 후에도 나쁘지 않았다. 2부 투어인 퓨처스투어 테이트앤드라일플레이어스챔피언십과 그레이터리치먼클래식 등에서 우승하며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하지만 정규 투어 우승 없이 긴 시간이 흐르면서 골프팬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다.

특기는 퍼팅. 제니퍼 송은 현지 인터뷰에서 “열 발짝 정도의 중거리 퍼트는 모두 집어넣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신있다”고 말했다. 이날 ANA인스퍼레이션에서도 그는 5m 안팎의 중장거리 퍼트를 차분하게 성공시켜 버디만 5개를 잡아내는 깔끔한 기량을 선보이며 연장전까지 진출했다. 대회 4라운드 내내 더블 보기 이상은 한 개도 내주지 않고 보기 4개만을 기록한 것도 퍼팅 덕이 컸다는 분석이다.


◆당일 뽑지 못한 ‘호수의 여왕’ 퐁당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파72·6763야드)에서 열린 ANA인스퍼레이션 최종일 4라운드는 연장 4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이고도 끝내 ‘호수의 여왕’을 가리지 못했다. 승부는 하루 뒤인 월요일 오전 8시(현지시간) 연장 5차전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연기됐다. 3라운드까지 4타 차 공동 3위를 달리던 박인비는 마지막날 보기 1개, 버디 6개를 묶어 5언더파를 기록했다. 결국 최종합계 15언더파로 린드베리, 제니퍼 송과 ‘3자 연장전’을 치른 끝에 린드베리와 이틀에 걸친 연장 승부를 벌이게 됐다. 박인비의 맞상대로 남은 린드베리는 4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시작해 1타를 덜어내는 데 그쳤지만 위기상황에서도 파를 지켜내는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며 연장에 합류한 뒤 막판까지 살아남았다.

1, 2차 연장전에서는 3명 모두 파에 그치면서 무승부가 됐고 제니퍼 송이 3차 연장전에서 파로 먼저 탈락했다. 박인비와 린드베리가 맞붙은 4차 연장에서도 승자를 결정짓지 못하자 주최측은 일몰을 이유로 5차 연장전을 다음날로 미뤘다.

LPGA 메이저대회에서 연장 승부가 다음날까지 이어진 것은 2011년 US여자오픈 이후 7년 만이다. 당시 악천후에 이은 일몰 탓에 월요일로 잔여경기를 미룬 이 대회에서 유소연은 서희경을 따돌리고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