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엔 설렘과 긴장 같은 게 동시에 느껴졌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3부투어(점프투어)로 프로 데뷔하는 성은정(19·사진). 그는 얼핏 ‘터프’한 선머슴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실제는 속 깊고 여리여리한 ‘소녀풍’에 가깝다. 얼마 전 CJ오쇼핑과 후원계약을 맺은 그는 요즘 대학 신입생(연세대 체육교육과)으로 수업을 듣는 와중에 3부투어 데뷔 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낸다.
절친 최혜진 성공 부럽지만 조급하지 않아… 新무기 콤팩트 스윙 기대하세요
“토론수업도 하고 글쓰기도 배우고 있어요.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고나 할까. 골프연습까지 하려면 힘들긴 하지만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차분한 시간이 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성은정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아마추어 스타 골퍼다. 2016년 비씨카드·한경레이디스컵 깜짝 준우승으로 존재감을 알린 그는 곧이어 US 여자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십과 US 여자 주니어 골프 선수권 대회를 동시 석권하며 글로벌 스타로 떠올랐다. 두 개의 미국 아마추어 메이저대회를 동시 제패한 건 그가 세계 여자골프 사상 처음이었다.

하지만 프로 대회까지 제패해 LPGA투어에 곧바로 데뷔하리라던 꿈은 좀체 실현되지 않았다. 국가대표까지 반납하고 시작한 ‘직진출 프로젝트’가 자꾸만 꼬이자 골프계의 관심도 조금씩 식어갔다. 그 사이 친구 최혜진(19·롯데)은 거액의 후원금을 받고 프로 데뷔했고, 벌써 통산 3승을 쌓았다. 동기보다 거의 1년가량 늦게 프로가 된 성은정은 한국 프로 무대와 미국 대회를 자주 오가며 ‘특급 루키’로 뜬 최혜진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처지가 됐다.

“과거나 현재의 모습에 연연하지 않으려고요. (김)효주 언니나, 리디아 고도 평생 잘 칠 것 같았는데 슬럼프가 왔잖아요. 반면에 (박)인비 언니나 (지)은희 선배가 부진을 겪다가도 30대에 들어서 부활하는 걸 보면 제가 조급했었다는 게 느껴집니다. 길게 보려고요.”

든든한 후원사가 생겨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그는 요즘 스윙 교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오래 쓸 ‘지속가능한 스윙’을 완성하겠다는 욕심에서다. 그는 드라이버로 300야드를 쉽게 치는 ‘슈퍼 장타자’지만 들쭉날쭉한 롱게임이 종종 그의 발목을 잡았다. 성은정은 “화려하고 역동적인 큰 스윙을 추구했고 장타자란 말이 좋았다”며 “쇼트게임은 큰 문제가 없는데도 스코어가 안정적으로 나오지 않았던 원인”이라고 자신의 문제를 진단했다.

해법은 보기 좋은 스윙보다 효율 높은 콤팩트 스윙으로 바꾸는 일이다. 백스윙 크기를 살짝 줄이고, 스윙궤도를 간결하게 정리해 정확도 높은 샷을 구사하겠다는 전략이다. 생생한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는 3부 투어를 통해 실전 기술의 완성도 역시 더 높일 작정이다. 내년도 KLPGA 1부 투어 풀시드권을 따낸다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월요 예선전 출전 등 LPGA 무대를 두드리는 일도 이어갈 생각이다.

성은정은 오는 18일 충남 부여의 백제CC에서 열리는 토백이 점프투어 5차전에 프로 자격으로 처음 발을 내디딘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