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무열 (주)한화 상무는 폭죽을 ‘물감’으로 여긴다. 그는 “불꽃쇼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하늘에 그려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손 상무가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이 쓴 12인치짜리 폭죽 모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화 제공
손무열 (주)한화 상무는 폭죽을 ‘물감’으로 여긴다. 그는 “불꽃쇼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하늘에 그려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손 상무가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이 쓴 12인치짜리 폭죽 모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화 제공
“아무리 잘 끝나도 늘 2% 아쉬움이 남는 게 불꽃쇼입니다. 하지만 평창만큼은 100점을 주고 싶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1983년 불꽃놀이팀에 처음 배속됐으니 올해로 36년째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길만 걸었다. 평창동계올림픽 불꽃쇼를 책임진 (주)한화 불꽃프로모션팀 손무열 상무(59)다. 이 ‘불꽃마이스터’의 지난 500일은 36년의 세월만큼이나 지난했다.

“중요한 게 안전이에요. 모든 걸 쏟아부었고, 무탈하게 끝난 게 가장 감사한 일입니다.”

◆‘긴장과 불면의 500일’

손 상무는 평창동계올림픽 ‘G-500’(개막 500일 전) 기념일부터 폐회식까지 15차례 불꽃쇼를 총괄지휘하며 올림픽 분위기를 달궜다. 거의 매일 열렸던 메달 시상식 불꽃쇼도 그의 손을 거쳤다. 오는 9일 개막하는 패럴림픽까지 줄잡아 20만 발의 폭죽이 투입되는 사상 최대 올림픽 불꽃 시리즈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같은 굵직한 불꽃쇼를 성공적으로 빚어낸 그이지만 ‘커리어의 정점’에서 맞은 평창은 특별했다. 완벽한 작품에 대한 욕심과 부담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수면제를 끼고 살았다. 몸무게도 4㎏가량 줄었다. 그는 “경력이 늘어날수록 아는 게 많아져서 그런지 걱정할 것도 많았다”며 “24시간 머릿속에 체크 리스트를 달고 살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최대 직경 25인치(64㎝), 무게 12~13㎏에 이르는 대형 폭죽이 터지지 않은 채 떨어지면 반경 250m에 불파편이 튀는 폭탄이 된다. 풍향과 발사각을 고려해 안전지대를 설정하는 게 필수다. 손 상무는 “안전구역이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경우라도 폭죽을 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혹시 있을 컴퓨터 에러를 막기 위해 개막전 모의 발사 실험 등 리허설도 일곱 차례나 했다. 리허설 때 이동식 발사대 제어 소프트웨어가 갑작스럽게 작동하지 않는 ‘의외의 버그’를 발견한 건 다행이었다. 그는 “개막식 직전 무대 바닥을 칠하면서 전날 표시해놨던 이동발사대의 위치가 다 지워지면서 발사대 배치 순서가 뒤엉켰다”고 말했다.

◆‘하늘에 그려낸 최고의 서사시’ 찬사

다행히 개·폐회식은 모두 성공을 거뒀다. 그는 “‘엄청났다!’는 해외 경쟁업체들의 이메일을 받고 나서야 ‘제대로 했나 보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며 “폐회식이 끝난 뒤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발 뻗고 잤다”고 했다.

불꽃쇼는 ‘멀티미디어 종합예술’의 한 장르로 진화하고 있다. 10만원이 넘는 유료티켓이 등장했고 동호회도 있다. 평창에서도 ‘쇼6’라는 이름이 붙어 개회식 공연에 정식 등록됐다. 불꽃쇼가 올림픽 정식 공연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 약 6분간 레이저 조명, K팝, 군무 등과 함께 펼쳐진 쇼6는 다른 개회식 공연물과 어우러져 ‘예술과 기술이 빚어낸 극강의 감동’이라는 국내외 매체들의 평가를 받았다. 전문 무용수들이 직접 불꽃놀이 장비를 몸에 부착하고 펼친 ‘휴먼 퍼포먼스 쇼’, 70m 상공에서 불을 뿜어낸 ‘타워 쇼’ 등은 평창에서 처음 시도된 창작공연이다. 작고 좁은 행사장의 단점을 고려해 이동식 발사대도 한화가 직접 개발했다. “적은 비용으로 스토리와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불꽃쇼만 한 게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패럴림픽 불꽃쇼도 보러 오세요”

불꽃놀이 기술도 진화 속도가 빠르다. 평창올림픽에도 중앙컨트롤박스 등 20대 이상의 컴퓨터가 동원됐다. 각각의 폭죽에 부여된 3차원 공중 좌표에 서로 부딪히지 않게 쏘는 ‘정밀 사격’이 핵심이다. 그는 “기본적인 색깔 외에도 연기 양, 소리의 종류와 강도까지도 정교하게 계산해야 하는 빅데이터 작업”이라고 말했다.

난도(難度)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모든 형태를 하늘에 그려낼 수 있다. 환희, 사랑, 기쁨, 슬픔, 좌절, 희망 등의 감정표현은 물론 알파벳, 하트 등 ‘형물(形物)’도 망라한다. 하늘이 캔버스, 폭죽이 물감, 발사대가 붓이 되는 격이다. 그는 “구조가 복잡한 한글은 여전히 까다로운 영역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반면 일명 ‘노가다’로 불리는 고역도 많다. 쇼가 끝난 뒤 남아 있을지 모를 불발탄과 잔재물 등을 수거하는 것도 불꽃팀의 몫이다. 한 발에 한 대씩 발사대가 필요한 만큼 수만 개의 발사대를 해체하고 수거하는 데도 2~3일이 걸린다. 손 상무는 “추위에 곱은 손을 불어가며 작업한 250여 명의 평창 불꽃팀에 큰 빚을 졌다”고 했다.

‘화룡점정’인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까지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화산불꽃 등 깜짝쇼를 준비했으니까 많이 보러 오세요.”

한화는 평창동계올림픽 불꽃쇼와 성화봉 제작, 축제행사 등에 들어간 비용 250억여원을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전액 기부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