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은 이변의 경연장이기도 했다. 특정 종목 최강자가 메달을 전혀 못따고, 깜짝 신예가 금메달을 수확하기도 했다.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는 스포츠의 세계를 잘 보여줬다.

체코의 에스터 레데츠카는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다. 그는 스노보드가 주종목이지만 알파인스키에도 출전했다. 레데츠카는 알파인스키 여자 슈퍼대회전 결선에서 올림픽 2연패를 노리던 오스트리아의 안나 파이트보다 0.01초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기 뒤 그는 자기가 1위라고 표시된 전광판을 한참 쳐다봤다. “뭔가 잘못된 줄 알았다”는 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레데츠카는 주종목인 스노보드 여자 평행대회전 결선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 최초로 ‘한 대회 두 종목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스켈레톤은 ‘황제의 퇴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이 종목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해 온 라트비아의 마르틴스 두쿠르스가 4위에 머물렀다. 같은 썰매 종목인 루지에서도 절대 강자였던 독일의 펠릭스 로흐가 뼈아픈 실수로 4위에 머물렀다. 대신 한국의 윤성빈 선수가 올림픽 첫 출전에서 스켈레톤 금메달을 따는 기염을 토했다. 윤성빈은 금메달을 확정한 뒤에도 으스대지 않았다. 그는 “두쿠르스는 여전히 내 우상”이라며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봅슬레이 4인승에서도 김동현·서영우·원윤종·전정린 선수가 은메달을 땄다. 썰매 종목에서 한국이 메달을 딴 건 이번 올림픽이 처음이다.

‘크로스컨트리의 여왕’인 노르웨이의 마리트 뵈르겐은 이 종목에서 적수가 없는 최강자였다. 그는 역대 올림픽 금메달 6개, 스키월드컵 110회 우승 등의 전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는 스키애슬론 여자 15㎞(7.5㎞+7.5㎞) 은메달, 크로스컨트리 여자 10㎞ 프리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스키애슬론에서는 스웨덴의 샬롯 칼라가, 크로스컨트리에서는 라그닐트 하가가 금메달을 땄다. 이들은 뵈르겐보다 적게는 7살에서 많게는 11살 어리다. 이번 경기를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한국 대표팀의 쇼트트랙 기대주 심석희가 500m와 1500m에서 예선 탈락하고 황대헌이 1000m에서 실격패했다. 쇼트트랙 경기가 몰린 지난 22일을 한국 대표팀은 ‘골든데이’라고 불렀지만 경기 결과 노골드에 그쳐 탄식을 자아냈다. 그러나 혜성처럼 떠오른 여자 컬링이 은메달을 거머쥐며 스포츠 팬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줬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