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오픈 4강에 진출해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쓴 정현이 지난 27일 멜버른 경기장 내 미디어센터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지난 22일 정현이 자신의 우상이던 노바크 조코비치를 16강전에서 꺾은 뒤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호주오픈 4강에 진출해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쓴 정현이 지난 27일 멜버른 경기장 내 미디어센터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지난 22일 정현이 자신의 우상이던 노바크 조코비치를 16강전에서 꺾은 뒤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회를 진짜 잘하기 위해 세웠던 목표는 인스타(그램) 팔로어 10만 명을 돌파하는 거였다. 목표를 이뤄 너무너무 행복하다. 모두 여러분 덕분이다.”

마치 아이돌그룹 인기 가수가 팬들에게 편지를 쓰듯,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남겼다. 코트에 넙죽 엎드려 절하는 사진과 함께다. 지난 26일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세계랭킹 2위·스위스)와의 호주오픈 4강전을 기권한 뒤였다. ‘진짜 목표(좋은 성적)’를 위해 심리적 자극기제(팔로어 확대)를 기술적으로 활용했다는 ‘엉뚱발랄’한 고백이다. 팬들은 “역시 정현!”이라며 열광했다.

4강전 기권 뒤 호주 현지에서 한 인터뷰에서는 “천재가 아니라 노력형”이라며 몸을 낮췄다. 이어 “한국에 가면 지하철을 타고, 돼지고기를 실컷 먹고 싶다”고도 털어놨다. 면허는 있지만 무서움이 많아 운전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겸손함과 소박함, 솔직한 기질을 다시 드러낸 것이다.

사상 첫 메이저 테니스 대회 4강 신화로 끓어오른 정현의 인기가 여전히 뜨겁다. 도전은 4강에서 멈춰섰지만 인기는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정현 팬덤은 특히 그가 26일 4강전을 기권한 뒤 물집으로 깊게 팬 오른발 사진을 SNS에 올린 뒤 더 강해지고 있다. ‘raka6377’이란 아이디를 쓰는 한 팬은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사진을 보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며 “2주 동안 당신은 나의 비타민이었다”고 썼다. 또 다른 팬은 “생살이 다 보이는 발로 페더러로부터 세 게임이나 따냈다는 건 기적”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정현이 관리하고 있는 SNS계정의 팔로어 수는 4강전 이후 이틀 만에 모두 두 배로 치솟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축전에도 곧바로 SNS를 통해 답신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정현이 4강전에서 기권한 다음날 축전을 보내 “정현 선수는 한국 스포츠에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고, 국민에게 자부심과 기쁨을 줬다”며 “너무나 장하고 자랑스럽다. 부상이 아쉽지만 다음에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더욱 위대한 선수로 우뚝 서리라 믿는다”고 격려했다.

이에 정현은 “보내주신 응원이 큰 힘이 됐고 책임감도 느끼게 한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을 응원하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씀에 테니스 선수로 깊이 공감한다”고 답신을 써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갑작스러운 ‘정현 신드롬’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귀국 전 현지 인터뷰에서 “진중한 모습과 그 안에서 센스를 돋보이려고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덕인 것 같다”며 “공항에 도착하면 실감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28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정현은 당분간 발바닥 부상 치료에 전념할 계획이다. 완치에는 4~6주 정도가 걸릴 전망이다. 차기 출전 대회는 발 회복 상태를 봐가며 신중하게 결정할 예정이다. 곽용운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은 “프랑스오픈과 US오픈, 윔블던 등 남은 3개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 10~15개 정도 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