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총상금 5500만호주달러·약 463억원) 8강전이 열린 24일(한국시간) 멜버른 로드레이버아레나 경기장. 1, 2세트를 잡은 뒤 3세트에서도 5-3으로 승리를 목전에 둔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세계랭킹 58위·삼성증권 후원)은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첫 번째 매치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테니스 샌드그런(97위·미국)과 11분 동안 듀스와 매치포인트를 주고받는 공방을 벌였지만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현은 침착하게 시속 178㎞짜리 서브를 중앙에 꽂아 넣었다. 오른쪽을 예상한 샌드그런이 중심을 잃으며 공을 받아내자 정현은 이번에 왼쪽 구석으로 방향을 틀었다. 샌드그런이 힘겹게 따라갔지만 라켓에 빗맞은 공은 코트 밖으로 나갔다. 3세트마저 따낸 정현은 눈을 감고 두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지난 22일 전 세계랭킹 1위였던 노바크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하면서 한국 테니스 사상 첫 ‘메이저 8강’의 신기원을 이뤄낸 정현이 다시 한번 첫 ‘메이저 4강’ 신기록을 작성한 순간이었다.

◆메이저 대회 ‘4강 신화’ 쓰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이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4강전에 진출했다. 경기 시작 2시간29분 만에 샌드그런(97위·미국)을 3-0(6-4, 7-6, 6-3)으로 완파한 그는 준결승에 진출해 우승까지 노릴 수 있게 됐다. 호주오픈의 최대 이변으로 떠오른 ‘겁 없는 20대’ 정현은 ‘차세대 유망주’ 꼬리표를 떼고 세계가 주목하는 테니스 스타 대열에 진입했다.

정현은 1세트 게임스코어 1-1에서 샌드그런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상대편이 서비스권을 가진 게임을 이기는 것), 3-1로 앞서며 기선을 제압했다. 이후 정현은 자신의 서브 게임을 착실히 지키며 1세트를 6-4로 따냈다. 2세트에서도 게임스코어 2-0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도미니크 팀(5위·오스트리아), 스탄 바브링카(8위·스위스)를 연파하며 8강에 오른 샌드그런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정현의 서브 게임을 두 차례나 브레이크하며 게임스코어 5-3으로 승부를 뒤집은 것이다. 하지만 정현은 곧바로 샌드그런의 서브 게임을 빼앗아 승부를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갔고, 타이브레이크에서는 4-5에서 연달아 3포인트를 따내 2-0을 만들었다.

특히 타이브레이크 점수 2-2에서 나온 정현의 절묘한 백핸드 발리는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 1만5000여 명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2세트 고비를 넘긴 정현은 3세트 게임스코어 2-1에서 상대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샌드그런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결국 4강 진출을 확정했다. 4강전 상대는 세계랭킹 2위 로저 페더러(스위스)다.

◆세계랭킹도, 상금도 ‘메이저급’

정현은 호주오픈 4강 진출로 누적상금 규모와 세계랭킹에서 모두 수직 상승하게 됐다. 4강 진출 상금은 88만호주달러(약 7억5600만원)다. 2014년 프로로 데뷔한 정현이 이전까지 벌어들인 총상금은 170만9608달러(약 18억3200만원)다. 4강 진출만으로 총상금의 40%가량을 챙겼다. 프로테니스 우승 상금 규모는 남자 골프를 능가한다. 테니스 US오픈이 39억4000만원이다. 호주오픈도 34억3000만원으로 모두 30억원을 훌쩍 넘는다. 골프는 US오픈이 약 24억3000만원, 마스터스 대회가 약 22억3000만원이다. 정현이 26일 4강전마저 승리해 최소 준우승을 확보하면 17억원을 받는다. 단일 대회 상금 규모로는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박성현(10억원)의 기록을 능가하게 된다.

정현의 세계랭킹도 관심사다. 현재 랭킹포인트 857점을 획득하며 세계랭킹 58위를 기록 중인 정현은 호주오픈 4강 진출로 랭킹포인트 720점을 확보했다. 이것만 더해도 1577점이다. 이렇게 되면 정현은 다음주 남자프로테니스(ATP)의 세계랭킹 발표 시 28위로 껑충 뛰어오른다. 이형택이 2007년 8월6일 기록한 36위보다도 높은 한국 선수 최고 기록이다. 호주오픈에서 우승한다면 세계랭킹 톱10에도 들 수 있다.

1996년생인 정현은 올해 만 21세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복식 금메달 획득으로 군 면제 혜택까지 받은 점을 고려하면 향후 정현의 톱10 진입 가능성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