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500m서 박승희 넘어뜨린 후 韓 네티즌 악성 댓글 시달려
몇 달 후 한국 훈련으로 트라우마 '정면돌파'
英쇼트트랙 크리스티 "소치 악플로 생긴 공포, 한국서 정면돌파"
한국 여자 쇼트트랙 쌍두마차 최민정·심석희의 평창동계올림픽 최대 적수인 영국 엘리스 크리스티(27)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이후 지독한 후유증을 겪었다.

메달 기대감에 부풀어 출전했지만 500m, 1,000m, 1,500m에서 모두 실격돼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특히 500m 결승에서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하다 박승희까지 함께 넘어뜨려 박승희의 금메달 꿈을 좌절시킨 탓에 올림픽 후 한국인들의 소셜미디어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크리스티는 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한국인들의 반응이 너무 무서워 잠도 잘 수 없었다"며 "지나치게 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엔 사람들이 정말로 나를 죽이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백 건의 인터넷 살해 협박에 시달렸던 당시가 크리스티에게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독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였다.

공포에 시달리던 크리스티를 보다 못한 코치가 정면돌파를 위해 한국행을 제안한 것이다.

소치올림픽이 끝나고 몇 달 후 크리스티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 처음 한국땅을 밟았고, 그녀의 공포는 희망으로 바뀌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크리스티는 "한국에서 모두가 내게 정말 친절해서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됐다"며 "선수들이 모두 나와 함께 훈련하고 싶어 했다.

지금까지 인생 최고의 경험 중 하나"라고 전했다.

물론 처음엔 힘들었다.

잔뜩 가라앉은 상태로 한국에 왔던 크리스티는 한국 코치와 훈련하는 처음 2주간은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한다.

기록을 내지 못하면 끊임없이 트랙을 몇 바퀴씩 돌아야 하는 군대식 훈련이었다.

12살짜리 선수들이 무거운 가방에 메고 스케이트를 신은 채 매일 수천 개씩 스쿼트를 하면서 우는 장면도 봤는데, 그때 한국에 왜 이렇게 강한 선수들이 많은지 깨달았다고 크리스티는 말했다.
英쇼트트랙 크리스티 "소치 악플로 생긴 공포, 한국서 정면돌파"
그는 "한국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고 늘 기꺼이 도와주려 했다"며 "그렇지만 힘들기도 했다.

어느 날은 기록이 안 나오자 그들의 코치가 너무 화가 나서 스톱워치를 선수에게 던졌다"고 회고했다.

한국에서 훈련 이후 스포츠 심리치료사 등의 도움으로 서서히 트라우마를 극복한 크리스티는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00m, 1,500m 우승하며 최민정, 심석희를 제치고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도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평창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을 위협한 최대 라이벌로 떠올랐다.

크리스티는 "홈 경기라 한국 선수들이 거침없이 나올 테고, 아마 내가 그들의 메인 타깃 중 하나일 것"이라며 "500m에선 중국 선수를 주시해야 하고 1,000m와 1,500m에선 한국 선수들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한국 선수들이 매우 강하고 서로 능숙하게 호흡을 맞춘다.

중국 선수들은 공격적이기 때문에 무섭다"며 "난 그들을 모두 제쳐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누구보다 우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치에서 최악의 세 차례 실격 이후 레이스에서 소극적일 때도 있었는데 2년째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인 헝가리 쇼트트랙 선수 류 사오린 샨도르의 격려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평창올림픽을 한 달여 앞둔 크리스티는 "실격의 공포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실격된다고 해도 (소치 때보다) 더 안 좋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소치 이후 나는 정말 비참했고, 다시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며 "그냥 즐길 것"이라고 다짐했다.
英쇼트트랙 크리스티 "소치 악플로 생긴 공포, 한국서 정면돌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