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데 없고 스윙도 완성 단계"…작년엔 우승 없었지만 수확 많았다"
LPGA투어 3년차 맞는 전인지 "장타력 되찾고 우승할래요"
"돌이켜보면 얻은 게 많은 시즌이었다. 2018년은 아픈 데 없는 건강한 몸에 든든한 스폰서까지 생겨 기대가 크다. 운동선수라면 목표는 늘 우승 아니냐"

전인지(24)는 지난 2017년을 상금랭킹 11위(125만 달러)와 평균타수 3위(69.41타), 세계랭킹 5위로 마쳤다.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인지는 우승 트로피를 하나도 손에 넣지 못했다.

준우승만 다섯 번이었다.

2015년 US여자오픈, 2016년 에비앙챔피언십 우승 때 쏟아졌던 스포트라이트는 사라졌다.

"전인지 선수는 뭐하냐"는 얘기도 나왔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한 달 동안 이어질 겨울 훈련을 떠나기에 앞서 경기도 성남 박원 골프 아카데미에서 만난 전인지는 "우승이 없어서 어려운 건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전인지는 "선수니까 우승없는 게 아쉬운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우승이 못한 걸 자책하진 않았다. 다음 대회 준비하느라 그럴 겨를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얻은 게 많은 시즌이었다. 더 높이 올라갔을 때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 같은 걸 미리 연습할 수 있었달까? 내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자양분을 얻었다"고 지난 시즌을 평가했다.

작년 경기력에도 후한 점수를 매겼다.

"사실 지금까지 샷이 잘 돼서 우승한 건 몇 번 안된다. 시즌 때 샷이 좋아서 과욕이 생겨 망친 대회도 있었고 반대로 샷이 맘대로 안 돼서 성적이 나지 않은 대회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시즌 마치고 나니 내가 작년보다 그린 적중률도 높아졌고 평균타수도 향상됐더라. 심지어 평균타수를 줄일 수 있는 파69 대회도 출전하지 않았는데 평균타수 줄었다. 이런 기록을 보고 내가 가는 길을 믿자는 자신감과 2018년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전인지가 2016년과 지난해 2년 동안 기록한 평균타수 69.493타는 LPGA투어에서 어떤 선수도 넘보지 못하는 최고 수준이다.

그래도 준우승 다섯 번이 아쉽지 않느냐고 묻자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2등 한 경기에서 마지막 날 내가 무너진 적은 없었다. 나도 나름 잘 쳤는데 꼭 한 선수가 펄펄 날았다. 최종 라운드에 6언더파를 치고도 역전패를 당한 적도 있다. 다 지나간 건데 아쉬워하면 뭐하나. 만약 그걸 아쉬워해서 더 나은 2018년이 된다면 얼마든지 아쉬워하겠지만…"

전인지는 연말에 KB금융과 메인 스폰서 계약을 했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모자 정면에 아무런 로고가 없는 '민모자'를 쓰고 경기했다.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음직 했지만 전인지는 "메인 스폰서가 없다는 걸 종종 잊어버릴 만큼 의식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서너 번 말했지만, 메인스폰서를 찾는 일은 결혼 상대를 찾는 거랑 똑같다. 심사숙고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하지만 메인은 없었지만 서브 스폰서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공백을 느끼지 못했다. 메인스폰서 없어서 받은 스트레스는 정말 없었다."

그렇지만 전인지는 새로 맞은 KB금융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환해졌다.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그는 "만족한다. 좋다. 날개 하나를 더 달았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전인지는 경기 때 늘 웃는다.

심지어 실수하거나 역전패를 당해도 웃는다.

유난히 준우승이 많았던 지난해 전인지의 이 미소는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됐다.

승부 근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타도 받았다.

전인지는 "주변에서 좀 아쉬워하는 표정을 해보라고 하길래 몇 번 해봤다"고 털어놨다.

결과는 대실패로 끝났다고 전인지는 깔깔 웃었다.

"그런 조언을 했던 분들조차 안 어울린다면서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하더라. 너무 부자연스럽고 연기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하하. 그래서 포기했다."

그는 "선수마다 다 다르지 않냐. 미스샷이 나오면 화를 내고 털어내라고 배워서 그런 선수도 있긴 하다. 저 같은 경우는 화를 내는 것보다는 웃고 넘어가는 게 다음 홀에서 결과가 더 좋더라"고 설명했다.

내친김에 캐디에게 두 손으로 클럽을 건네는 특이한 행동을 물어봤다.

"원래 그랬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친구나 후배가 캐디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미국에 가서 첨엔 이게 캐디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서 다른 선수처럼 한 손으로 건네려고 했더니 오히려 의식이 되어서 더 신경 쓰이더라. 난 두 손으로 건네는 게 더 편하다. 캐디도 이제는 내가 그게 더 편하다는 걸 알고 그러려니 한다"

전인지는 2018년 시즌을 앞두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경기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어깨 부상 후유증과 허리 통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2016년에는 정말 통증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작년에는 한 번도 통증이 없었다. 너무 기쁜 일 중에 하나다. 2014년 빼곤 겨울에는 늘 부상 때문에 고생했는데 올해는 너무 건강한 몸으로 맞았다."

전인지는 "밝고 희망찬 2018년 시즌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인지는 3일부터 겨울 훈련을 시작한다.

한 달 가량 훈련한 뒤 훈련 성과를 봐가며 올해 첫 대회를 어디서 치를지 결정할 계획이다.

2월15일 시작하는 호주여자오픈이 시즌 첫 대회로 유력하다.

전인지의 동계훈련의 중점은 뜻밖에도 비거리 늘리기다.

"스무 살까지는 거리를 많이 냈는데 그게 나쁜 스윙으로 했던 거라 그 여파로 어깨 부상이 생겼다. 그 이후에 달래치기만 했다. 장타를 치기 위해 강하게 휘두르는 데 두려움이 있었다. 올해 초반에 어깨 부상이 다 나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제 정확한 스윙으로 거리를 늘리는 데 중점을 두겠다. 교정 중인 스윙도 완성 단계다. 이번 동계훈련 때 완벽하게 만들겠다"

전인지는 프로 무대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장타자였지만 어느새 장타자 반열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전인지는 LPGA투어에서 장타 부문 79위(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 252.18야드)에 그쳤다.

전인지는 그러나 장타를 앞세운 경기 스타일로 바꾸지는 않을 것 같다.

"거리 많이 나가면 유리한 건 사실이다. 장타를 칠 능력이 있는데 장타를 외면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스마트하는 플레이가 더 어울린다. 정확도를 유지하면서 거리를 늘리는 쪽으로 시도해보려고 한다"

전인지는 올해 목표는 '우승'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운동선수라면 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한가지 욕심이 있다면 ANA인스퍼레이션 대회는 꼭 우승해보고 싶다. 연못에 같이 뛰어들고 싶은 사람들 많다. 박원 코치님은 연못에서 코끼리 세리모니도 한번 해보시라고 하신다"

시즌 첫 번째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은 2016년 전인지가 신인 때 준우승을 했던 인연이 있다.

전인지는 올해 국내 대회도 적극적으로 출전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한국 대회 일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정이 나오면 미국 일정과 견줘보고 출전이 가능한 대회를 골라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인지는 신인 때부터 부모님 없이 혼자 투어를 다녔다. 올해가 3년째가 되는 셈이다. 이른바 홀로서기 전략이다.

전인지는 "믿고 놔주신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거기는 내 직장이다. 부모님이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더니 눈이 촉촉해졌다.

"내가 골프를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가세가 기울었다. 집이 없어서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았다"고 털어놓은 전인지는 "비슷한 처지였던 친구가 있었는데 골프가 싫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해서 골프를 그만뒀다. 부모님 고생시키는 게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나는 부모님 희생 덕에 골프 선수가 됐다. 이제 부모님께서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팬들에게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

"작년에 우승이 없어도 팬들의 사랑과 응원은 여전했다. 아프지 않고 시즌을 마친 것만도 고맙다고 하신 분들도 많았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2018년에는 멋진 경기로 보답하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