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트 먼저 내준 정현, 패색 짙던 2세트에서 역전극
정신력에서 무너진 루블레프 자멸


정현(21·삼성증권 후원)은 다소 지쳤고, 1살 어린 안드레이 루블레프(20·러시아)는 상승세를 타고 기세등등했다.

정현이 한국 선수로는 14년 10개월 만에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 우승을 차지한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 결승.
정현은 1세트를 먼저 내준 뒤 2세트에도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당해 게임 스코어 0-1로 불안하게 출발했다.

정현은 전날 준결승에서 다닐 메드베데프(21·러시아)와 풀세트 접전을 펼쳤고, 루블레프는 보르나 초리치(21·크로아티아)를 3-0으로 완파하고 체력을 아꼈다.

그 여파 탓인지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 접전 끝에 내준 정현은 2세트 첫 서비스 게임마저 잃었다.

이번 대회는 테니스 '스피드업'을 위해 세트당 4게임 제로 치렀다.

그만큼 브레이크 당한 걸 만회할 기회가 부족했다.

보통 선수였다면 '멘털'이 완전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정현은 끄떡없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오승환(35)의 별명이 '돌부처'인 것처럼, 정현은 마치 테니스 코트의 '돌부처'처럼 표정 변화 없이 공에 집중했다.

정현은 서비스 게임을 잃은 뒤 상대 서비스 게임을 잡지 못해 2세트 0-2까지 몰렸다.

여기서부터 정현의 역전극이 시작됐다.

2-3으로 몰린 가운데 루블레프의 서비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선을 제압했다고 생각했던 루블레프는 첫 서브가 안 들어가자 부쩍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현은 차분한 스트로크로 상대 범실을 유도해 브레이크에 성공했다.

자신의 서브를 지켜 3-3 타이브레이크에 들어간 정현은 한층 더 안정적으로 경기했다.

이번 대회는 선심 대신 호크아이가 인·아웃을 판정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루블레프는 애꿎은 판정 탓을 하면서 자멸했다.

정현은 2세트를 극적으로 따낸 뒤에도 방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트로크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백핸드다운 더 라인은 루블레프의 발밑에 꾸준히 꽂혔다.

공에 화풀이하던 루블레프는 라켓까지 바닥에 던졌다.

마지막 포인트까지 집중력을 유지한 정현은 3-1 역전승으로 우승을 확정한 뒤에야 처음으로 웃었다.

영국 신문 텔레그래프는 정현의 잠재력을 이번 대회 출전한 8명 가운데 7위로 매겼다.

정현은 강력한 서브도, 상대 발을 묶어놓는 힘 넘치는 스트로크도 갖추지 못했다.

대신 정현에게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멘털'이 있었다.

21세 이하 선수가 출전한 대회라 그의 정신력이 더욱 돋보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