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연 회장이 충북 단양군에 있는 대호단양CC 집무실에서 앨버트로스 기념패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관우 기자
황호연 회장이 충북 단양군에 있는 대호단양CC 집무실에서 앨버트로스 기념패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관우 기자
홀인원 3번, 이글 31번, 앨버트로스 한 번. 어느 유명 프로 골퍼의 기록이 아니다.

아마추어 고수 황호연 대호단양CC 회장(79)의 40년 골프사를 압축한 수치다. 그는 한국 골프 역사상 일곱 번째 앨버트로스 골퍼다. 앨버트로스는 홀인원보다 확률이 100배 낮은 희귀 사건이다. 파5홀에서 나올 확률이 200만분의 1, 파4가 585만분의 1 확률이라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세 배 정도 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지난 5월 골퍼의 마지막 꿈으로 불리는 ‘에이지 슈트’(자기 나이와 같거나 적은 타수 기록)를 작성한 것이다. 황 회장은 “누구보다 골프를 사랑했지만 그 골프가 삶의 8할을 채워줬다”며 “골프에 많은 걸 빚졌다”고 했다.

그는 40대 초반이던 1979년 골프를 시작했다. “어릴 적 꿈인 창업에 몰입해 있던 때라 건강이 안 좋았어요. 키가 178㎝였는데 몸무게가 58㎏밖에 나가지 않았죠. 거래하던 은행 지점장이 7만5000원짜리 연습장 쿠폰을 끊어주며 골프를 권했는데 그게 제 운명을 바꿔놓은 겁니다.”

쭉쭉 뻗어나가는 공을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왜 진작 배우지 않았을까’라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딱 15일 레슨을 받은 뒤 실전기술 연구에 들어갔다. 잭 니클라우스 비디오와 책을 사 독학했다. 입문 2년3개월 만인 1981년 광복절에 100타를 깼고, 또 2년 뒤엔 싱글에 진입했다. 존 댈리를 연상케 하는 화끈한 오버스윙(백스윙이 큰 스타일)으로 270~280야드를 날렸다. “백스윙을 하면 왼쪽 눈에 클럽 헤드가 보일 정도로 허리를 많이 돌렸어요. 지금은 상체 중심으로 스윙하지만….”

매너와 실력이 다 괜찮다는 평을 받으면서 곳곳에서 ‘운동 같이하자’는 신청이 밀려들었다.

79세에 79타…꿈같은 '에이지 슈트' "건강한 삶 선사한 골프에 많은 빚 졌죠"
“골프 실력도 인맥도 확 늘었지만 사람 보는 눈이 확실히 달라집디다. 정도와 신의를 지킬 수 있는지가 훤히 보이더군요.”

한 번은 한 거래처 대표와 골프를 친 뒤 직격탄을 날렸다. 퍼터를 집어던지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직후다. “앞으로는 당신과 골프를 치지 않을 테니 거래도 끊읍시다.”

타일로 시작한 사업은 시나브로 덩치가 커졌다. 건축자재, 부동산, 골프연습장 등 사업영역이 부쩍 늘어났다. 2010년에는 대호단양CC까지 인수했다. 이 골프장은 인수 첫해 ‘한국의 10대 퍼블릭 코스’로 뽑혔다. 대호단양은 골프텔을 무료로 제공해 수도권 주말골퍼들에게 1박2일 코스로 인기가 높다. 40여 년간 키워낸 6개 회사 역시 지난해 모두 흑자를 기록했다.

골프가 준 가장 큰 선물은 건강이다. 지금도 월 5~6회 정도 라운드를 소화하는 그는 골프를 시작한 이후 잔병치레를 하지 않았다. 골퍼에게 흔한 엘보(팔꿈치 부상), 허리 부상도 없었다. 친구들이 “아직도 골프 치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며 부러워한다는 설명이다.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10분 스트레칭이다. 역기나 아령 같은 무거운 운동기구를 들어본 적도 없다. 황 회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침저녁으로 10분씩 스트레칭을 한다”며 “골프를 시작했을 때부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방식도 간단하다. 어깨 팔 손 엉덩이 무릎 발목 순으로 여러 차례 관절을 돌리고 풀어주는 것이다.

40년 골프를 쳤으니 성적을 잘 내는 요령을 터득하진 않았을까. 그는 “골프든 비즈니스든 요령은 없다”고 했다. 대신 제시한 게 ‘자·집·서’론이다. ‘자신감을 갖고 집중하되 서서히 스윙하라’다. 특히 ‘서서히’에 방점을 찍었다.

“빨라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많아도 천천히 해서 문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는 지금도 200야드를 거뜬히 날리는 장타자다. 하지만 비거리는 신경쓰지 않는다. 건강 골프를 위해서다. 거리가 줄어들면 롱아이언이나 하이브리드를 활용해도 싱글 골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남은 꿈이 한 가지 있다. ‘사이클링 버디’(파3, 파4, 파5홀 연속 버디)다. 남들은 꿈도 못 꾼다는 앨버트로스도 해봤지만 이상하게 이 기록과는 인연이 닿지 못했다.

“(골프) 참 오래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목표가 생겨서 그런지 다시 열정이 살아나데요. 더 건강해야죠. 몸 어느 한 곳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골프는 아무것도 안 되거든요. 골프 신기하죠?”

단양=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