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체육관에서 연습 중인 오리온 선수들. 사진 전형진 기자
고양체육관에서 연습 중인 오리온 선수들. 사진 전형진 기자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팬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2016년 12월 31일 '2016∼2017 KCC 프로농구' 오리온과 서울 SK 나이츠는 당초 16시로 예정됐던 경기를 22시로 조정했다. 팬들과 함께 '송구영신'(送舊迎新) 하기 위해서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체육관을 가득 메운 팬들과 각 팀 선수들은 한 목소리로 새해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경기장을 찾은 한 고양시민은 "농구를 보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면서 "정례화를 추진해야 할 정도로 획기적인 이벤트"라고 말했다.

프로스포츠 최초로 진행된 심야 경기인 탓에 우려도 있었다. 선수들의 경기력과 비용에 대한 손해는 감수했지만 흥행이 문제였다. 경기가 다가올수록 내부에서는 "과연 될까?"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경기 당일 고양체육관은 6000여석의 입장권이 모두 동났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 6차전 매진 때보다 많은 숫자다. 오리온이 예상했던 4000여명과 비교하면 '대박' 수준이다.

오리온이 연고지 이전 6년 만에 고양시민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올 시즌 2라운드 기준 유료관중은 지난 시즌 대비 40% 증가했다. 시즌회원은 17% 늘었다. 연간 관중도 2013~2014시즌 이후 꾸준한 증가세다.

프로스포츠에서 둥지를 옮긴 구단이 새 연고지에서 환영받기란 쉽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는 프로야구의 현대 유니콘스다. 인천을 연고로 하던 현대는 서울 이전을 전제로 수원에 2년간 '잠류'하기로 하면서 인천과 수원시민들의 자존심을 긁었다.

결국 서울 입성이 무산된 현대는 수원에서 일곱 시즌 동안 세 번이나 우승했음에도 연간 평균관중 14만명에 그칠 정도였다.
최성 고양시장. KBL 제공
최성 고양시장. KBL 제공
오리온도 처음부터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김태훈 사무국장은 "처음 고양에 왔을 때 우리가 골을 넣든 상대가 골을 넣든 관중은 기계적인 박수만 칠 정도로 연고 개념이 희박했다"며 "중립 구장에서 경기를 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고양시민들에게 '우리 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오리온은 더 밀착했다. 시 행사에는 선수단이 빠짐없이 참석하고 경기에는 지역 학생들을 초대했다.

이름만 연고를 가진 농구단들과 달리 고양에 숙소를 둬 시즌과 비시즌을 가리지 않고 시민들을 만났다. 연습경기 때는 경기장 문을 언제나 열어뒀다.

특히 반응이 좋은 것은 '하이 파이브'다. 3년 전부터 오리온 선수들이 승패와 관계없이 관중과 나누기 시작한 하이 파이브는 이제 팬들이 먼저 기다리는 일종의 의식이 됐다. 이를 따라하기 시작한 구단이 생겨났을 정도다.

김 사무국장은 "고양시민들이 상대팀을 향해 처음으로 야유를 보내주던 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며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을 형이나 오빠로 친숙하게 부르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찡하고 보람차다"고 말했다.
강화유리로 개선된 고양체육관 난간. 사진 전형진 기자
강화유리로 개선된 고양체육관 난간. 사진 전형진 기자
오리온의 정착에 고양시도 큰 힘을 보탰다.

특히 최성 시장의 열정이 뜨겁다. 오리온 시즌권 1호 구매자는 언제나 최 시장이다. 그는 아직도 홈 경기의 대부분을 경기장에서 관람한다. 오리온 주최 농구대회에 선수로도 참가했다.

최 시장은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오리온이 판정 시비를 겪었을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이용해 "불공정한 세상에 농구라도 공정해야 한다"며 불만을 드러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오리온이 14년 만에 우승에 성공하자 열성팬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골망 커팅식에 초대받기도 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시장에게 골망 커팅을 맡기는 구단은 어디에도 없다"며 "가끔은 시민구단으로 착각하고 계신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고양시 또한 조례를 개정해 경기장 사용료를 50% 인하했고, 난간 교체와 전광판 추가 등 시설을 중점적으로 개선했다.

계은영 체육진흥과 전문위원은 "국내 최초인 6면 전광판 외에도 2개의 전광판을 추가로 설치했다"며 "공공기관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다른 지자체와 비교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는 관내 42곳의 전광판과 659대의 버스 광고를 통해 오리온 홈 경기 일정을 홍보하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카운트다운 매치' 당시 고양체육관에서 출발하는 7개 버스노선을 새벽 1시까지 연장 운행하며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태훈 사무국장은 "오리온은 고양에 온 뒤 성적이 반등하다 두 번째 우승반지를 꼈고, 시장님은 재선, 시는 인구 100만을 돌파했다"며 "윈윈하는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기억을 공유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