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2017!] "공부로는 못해도, 골프로는 세계 1등 자신 있어요"
“작년에 진짜 오비(아웃오브바운즈) 딱 한 번 냈어요! 너무 제 자랑인가요? 호호.”

수줍은 듯하면서도 화끈하다. ‘깨알자랑’까지 조근조근 풀어놓는 걸 보면 자신감이 만만찮다. 내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입성하는 기대주 배소현 프로(23·사진)다. 박성현(23) 전인지(22·하이트진로) 이보미(28) 등이 모두 그처럼 한때 2부 투어(드림투어)를 호령하던 선배 스타들이다.

그는 올 시즌 드림투어 상금왕 자격으로 내년 시즌 정규 투어 전 경기를 뛰는 풀 시드를 손에 쥐었다. 18세 때부터 두드려온 문이니, 5전6기로 꿈을 이뤘다.

2부 투어에선 이미 1승을 올려 챔피언 대열에 합류한 그다. 하지만 1부 투어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절친인 박성원(23·금성침대)이 정규 투어 챔피언에 오르고 동갑내기인 박성현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진출한 것을 견주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공부로는 세계 1등 못할 것 같은데, 골프로는 왠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3 때 골프로 방향을 틀었죠.”

한 번 결정을 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밀어붙이는 성격이 골프에도 작동했다. 태권도 3단에, 전교 1~2등을 다투던 공부 등 뭐든 시작하면 끝장을 봤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대신 검정고시를 친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취미인 종이공작도 손가락 부상을 염려해 딱 끊었다. 하루 15시간씩 클럽을 휘둘렀다. 손과 발에 동상이 걸리는 줄도 몰랐다. 3년 만에 프로가 됐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금방 손에 잡힐 듯하던 우승은 가까이도 오지 않았다. 초조해지니까 샷이 또 엉켰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베팅한 대로 밀어붙이자고 최면을 걸었어요. 나는 하루하루 진화하고 있다는 자기최면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친구들로부터 ‘드귀(드라이버 귀신)’란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을 만큼 드라이버를 잘 쳤다. 시즌 페어웨이 적중률이 85.7%. 정규투어는 물론 LPGA투어에서도 보기 드문 정확도다. 하지만 드라이버만으론 부족했다. 그린 주변 어프로치와 퍼트 등 쇼트게임이 발목을 잡았다. 스포츠심리 전문가인 아버지(배원용)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배씨는 1990년대 중반 골프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전문 골프 교습가다.

배소현은 “아빠의 도움으로 본능과 감각을 최대한 일깨우는 스타일로 골프를 바꾼 뒤 실력이 확 늘었다”고 말했다. 퍼트방식부터 다르다. 공에 점 하나를 찍은 뒤 그 점을 위에서 바라보며 퍼트를 한다. “집중이 훨씬 잘되는 것 같아요. 점을 찍으니까 공이 굴러가는 궤적을 더 섬세하게 분석하게 되더라고요.”

그린 굴곡이나 브레이크를 보는 것도 뒤에서 보는 게 아니라 어드레스 자세로 고개만 돌려 옆으로 본다. 어드레스한 뒤에는 지체 없이 퍼팅 스트로크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배소현은 “퍼팅은 잡생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며 “이런 감각 키우기가 쇼트게임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성적이 쑥쑥 올라갔다. 4년 전 132위였던 상금 순위가 2013년 76위, 2014년 53위로 조금씩 오르더니 지난해 43위를 찍었고, 올해 1위를 꿰찼다.

내년 첫 시즌 목표는 투어 1승과 신인왕이다. 이전에는 승부욕이 앞섰다면 앞으로는 골프 자체를 즐기고 몰입하는 골퍼가 될 작정이다.

“얼마 전 이창호 9단이 쓴 《부득탐승(不得貪勝)》이란 책을 읽었어요. 승리를 바라면 오히려 얻지 못한다는 뜻인데, 마음에 와 꽂히더라고요. 조바심 내지 않고 차근차근 올라가겠습니다.”

배소현 프로는

▷1993년 울산 출생
▷불국사초-불국중-고졸 검정고시
▷2011년 KLPGA 입회
▷2016년 무안CC 올포유 드림투어 15차전 우승
▷2016년 비바하트배 드림투어 8차전 준우승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