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기 맞은 골프장 주말마다 꽉 찬다는데…김영란법 충격 벗어나나
“아니, 이게 겉모습만 보면 진짜 안 된다니까요!”

1일 오후 경기 용인의 A골프장. 평일임에도 클럽하우스는 지역 모 단체의 골프대회에 참석한 골퍼들로 북적거렸다. 27홀 규모의 이 골프장은 이날 오전 11시40분 이후 2부 타임 40팀 예약이 모두 차 있었다. 이 골프장의 B사장은 그러나 “이 정도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 충격이 이미 가신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에 와보면 당연히 북적대는 걸로 보이죠. 아침에 안개가 끼고 해가 늦게 뜨니까 예약하는 시간이 다 오전 11시 이후에 몰려요. 실제는 작년보다 하루에 대여섯 팀이 빈다니까요.”

◆구매력 떨어지는 동호인 북적

연중 최고 성수기를 맞은 이 골프장은 주말 하루 120팀이 만석. 하지만 지난달 28일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많아야 105팀에서 110팀 정도 차는 게 일상이 됐다. 그러다보니 한 달간 매출이 15% 정도 줄어든 상태다. 그는 “단골 고객인 대학 교수님 몇 분은 제자들 마주칠까 무섭다며 아예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며 “(법 시행이) 한 달쯤 됐는데도 달라진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골프장이 처한 특성에 따라 법 시행으로 인한 ‘상처’의 정도가 각양각색이라고 전했다. 주중회원을 포함해 회원이 1000명이 넘는 이 골프장은 대기수요가 많아 그나마 빈자리를 채울 수 있어 ‘경상’에 속한다. B사장은 “접대 목적이 아닌 팀이 많다 보니 주말 1인당 매출이 1만6000원 안팎 줄었다”고 했다.
성수기 맞은 골프장 주말마다 꽉 찬다는데…김영란법 충격 벗어나나
‘중상’을 입은 곳은 200~300명의 소수 회원만 입장을 허용하는 수도권과 경기 인근의 최고급 회원제 골프장들이다. 유력 대기업이나 중견그룹이 대다수 보유하고 있는 이 골프장들은 회원이나 가족회원, 지정회원 등을 동반하거나 이들이 직접 와서 사인을 해주지 않으면 라운드 자체를 못하는 곳이 많다. 빈자리가 생겨도 ‘물관리’를 위해 비회원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했다. 경기 여주의 한 프라이빗골프장 지배인은 “20% 정도 내장객이 준 것 같다”며 “그룹에 당분간은 접대골프를 하지 말라는 금지령이 떨어지고 법인카드까지 회수한 곳도 있다고 들었다”고 털어놨다.

반면 퍼블릭은 주말은 물론 주중까지 빈자리가 없다. 접대골프가 아니라 개별 동호회, 단체팀이 많아서다. 인천 지역의 한 대형 퍼블릭골프장 관계자는 “골프대회가 열린 주간을 제외하고 남아 있는 티타임이 없다”며 “법 시행 영향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접대골프 빠진 자리 찾아 북쪽으로

그린피가 20만원 안팎인 고급퍼블릭 골프장도 북적대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이곳들 역시 접대골프팀 비중이 줄면서 내장객 1인당 매출이 15% 안팎 줄었다. 안성의 한 퍼블릭 골프장 지배인은 “식당을 외주로 줘 그나마 타격이 작은 편”이라며 “골프공이나 옷, 클럽, 과일 같은 선물 매출은 40%나 줄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털어놨다.

지역으로보면 전남 등 남쪽 지방이 타격이 큰 편이다. 경기수도권에서 접대골프가 빠진 자리를 강원 충청권 골프장 고객들이 메워주면서 생기는 도미노 북진현상 때문이다. 전북의 한 골프장 관계자는 “전라도 지역 골프장은 밑에서 올라와 메워주는 골퍼들이 없어 법시행 유탄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린피의 30~50%가량을 깎아주는 특가세일이나 취소된 티타임을 ‘부티크’로 불리는 특수영업맨에게 팔지 않으면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게 이 지역 골프장 대표들의 하소연이다. 한 유명 골프장은 경상권과 충청권 골퍼들을 유인하기 위해 카트비를 아예 받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

진짜 ‘무풍지대’는 일반 퍼블릭 골프장들이다. 그린피 14만~18만원대로 회원제보다 3만~5만원가량 저렴해 개별 골퍼들이 몰리는 덕이다. 접대를 받던 골퍼 중 일부가 일명 ‘N빵 골프족’(각자 계산)으로 유입되면서 오히려 부킹하기가 더 어려워진 퍼블릭도 늘고 있다. 이달 초 고교 동창과 일요일 티타임을 부킹하려던 한 홍보대행사 대표는 “수도권에서 가까운 네 군데 중저가 퍼블릭을 열흘 전부터 알아봤는데, 주중 주말 모두 예약 만료라는 답변을 받아 놀랐다”고 말했다.

골프장 업계에선 내년 4월께면 법시행 충격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최대 성수기인 만큼 문전성시 같은 ‘착시현상’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골프장지역협의회 관계자는 “최소한 평균 5~10%의 매출 감소가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용인=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