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은퇴하는 '베테랑 골퍼' 이미나
‘채를 거꾸로 쥐고도 30등은 할 선수.’

베테랑 이미나(35·볼빅)의 가장 큰 강점은 ‘안정적 스윙’이다. 힘들이지 않고 채를 툭툭 던져 깔끔하게 원하는 거리와 방향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일품이다. 국내 투어(KLPGA) 5승, 미국 투어(LPGA) 2승 등 프로 통산 7승을 올린 것도 안정적인 샷 메이킹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지난 18일 만난 이미나는 “특별히 재능을 타고나지도, 독하지도 않았지만 꾸준히 가는 모습을 팬들이 좋아해주셨다”고 말했다. 지금은 박성현(23·넵스) 전인지(22·하이트진로) 등 수백 명의 팬클럽을 몰고 다니는 ‘빅스타’가 많지만 그는 국내 투어에서 뛸 때 열성팬들이 꼬박꼬박 대회장 응원을 오는 몇 안 되는 스타였다. 데뷔 첫해인 2002년 3승을 챙기며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 이후 6년 만에 신인왕, 상금왕, 올해의 선수 등 3관왕을 거머쥔 ‘슈퍼 루키’가 이미나다.

그는 “그때는 골프가 대중적 인기를 끌 정도는 아니어서 팬들과 같이 삼삼오오 어울려 밥도 먹으러 다녔다”며 “수백 명이 유니폼까지 맞춰 입고 응원하는 지금 대회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이제 그런 이미나를 필드에선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됐다. 올 시즌을 끝으로 LPGA 은퇴를 결심했다. 6월 끝난 월마트아칸소챔피언십이 사실상 마지막 대회가 됐다. 2005년 LPGA 루키로 데뷔했으니, 대략 11년6개월간의 LPGA 투어 생활이었다. 우승 2회, 톱10 33회, 총상금 490만달러(약 55억원)면 꽤 괜찮은 성적. 못내 아쉬운 것은 2006년 이후 우승 소식을 팬들에게 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메이저대회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2011년 브리티시여자오픈과 2014년 웨그먼스LPGA챔피언십 등에서 선두에 올라 우승을 바라봤지만 막판 뒷심이 달리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우승 한 번 더 하고 박수칠 때 떠나려고 했는데 그게 10년을 훌쩍 넘겨버렸어요. 지난해엔 진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잘 안 되더라고요.”

사실 서른다섯은 10대, 20대 ‘천재’들이 주도하는 LPGA투어에서 환갑을 넘긴 나이나 마찬가지다. 카트리나 매슈(영국)나 카리 웹(호주) 등 노장들이 분전하고는 있지만 이례적인 일이다. 이미나는 “LPGA에 데뷔할 때만 해도 250야드만 쳐도 장타자라며 선수들이 구경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280야드를 때리는, 그것도 정교하게 치는 선수들이 즐비하다”며 웃었다. 그만큼 실력과 신체 조건, 경쟁 수준이 훨씬 높아졌다는 얘기다.

치열한 경쟁을 함께 겪어낸 한국 동료를 많이 만난 것은 행운이고 고마운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특히 얼마 전 은퇴한 박세리는 투어를 뛸 때 맛집 순례와 치맥(치킨+맥주) 수다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하던 친언니 같은 선배였다. 이미나는 “세리 언니는 병풍 같은 존재였다”며 “힘든 투어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비빌 언덕’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그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다만 방송활동과 레슨, 공부는 꼭 병행해서 해볼 작정이다.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어서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