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 기자의 여기는 리우!] '골든슬램' 박인비에 열광…골프 퇴출론 쏙 들어가
“인비 팍(박인비·사진)은 왜 그렇게 골프를 잘하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22일(한국시간). 바하의 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영어자원봉사자 페르난도 하지(27)는 이렇게 물었다. 박인비뿐만 아니라 양희영(4위) 전인지(13위) 등 한국 선수는 물론 은메달을 딴 리디아 고, 4위 노무라 하루, 7위 이민지 등 한국계까지 7명이 상위 13위에 들었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언빌리버블, 거의 절반이네요!”

박인비가 사상 첫 ‘골든슬램’을 달성한 지 하루가 지났지만 브라질인은 여전히 ‘골프 민족 꼬레안’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빛을 반짝거렸다. 방탄소년단, 빅뱅 등 아이돌 그룹이 몰고 온 한류가 골프로까지 이어 붙는 듯한 분위기다.

‘박인비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세계 정상급 남자 선수들이 죄다 불참을 선언해 들끓었던 올림픽 골프 종목 폐지론부터 쏙 들어가버렸다. 남자골프의 흥행이 군불이라면, 화룡점정을 한 게 박인비의 골든슬램 스토리다. 정창기 대한골프협회 감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골프를 새로운 흥행카드로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남녀골프 결승전 티켓은 1만2000장이 모두 팔려나갔다. 골프 경기장을 방문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필드를 가득 채운 인파를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띤 채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 불모지 브라질에도 골프 붐이 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바하다치주카 골프장에서 만난 동포 안드레스 고는 “이 정도 열기면 골프장이 신설되고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겠느냐”며 “브라질 정부가 바라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11%에 달하는 실업률은 브라질 정부의 지상 과제 중 하나다.

‘이룰 건 다 이룬’ 박인비 개인에게도 새 목표 수립에 영감을 준 게 올림픽 골프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승민처럼 올림픽선수위원으로 국제 스포츠 외교 무대에 데뷔할 기본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당해 올림픽 또는 직전 올림픽 출전 선수가 올림픽 선수위원 출마 자격이다. 금메달은 투표권자인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일 결정적 카드다. 유승민 신임 위원은 선거에서 당선된 지 이틀 만에 하루 숙박비 100만원짜리 고급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비용은 모두 IOC가 댔다. 폐막식에서도 그는 귀빈 자격으로 단상에 올랐다.

한국 선수단도 덕을 봤다. 박인비의 금메달은 11위이던 종합성적을 8위로 끌어올린 결정적 피날레였다.

주목할 것은 국가주도의 한국 엘리트 스포츠에 던지는 ‘갓(God)인비 신드롬’의 메시지다. 박인비는 스스로 골프를 즐기고 익혀 ‘살아 있는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공공 지원이 아니라 자기선택과 자기투자의 결과다. 세금이나 기업 후원에 의존하는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가 죄송해하거나 눈물을 쏟고, 팬들은 과도하게 실망할 필요가 없는 자기주도 스포츠다. 한국 스포츠가 지속가능한 생활체육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방향이다. 아르헨티나만 해도 현직 내과전문의가 유도 금메달을 딸 정도로 자기주도 생활 스포츠에 익숙하다.

골프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개인종목 외에도 단체전, 남녀 혼성팀 종목 등이 추가될 공산이 크다. 피터 도슨 세계올림픽골프연맹(IGF) 회장은 “좀 더 흥미진진한 경기가 될 수 있도록 종목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골프가 새 금맥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도쿄올림픽은 그래서 박인비가 골프계에 던진 숙제다. 미국과 유럽 국가 골퍼들은 라이더컵, 솔하임컵 같은 단체전 경기를 어려서부터 경험한다. 한국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경기방식이다. 세계 최강이란 한국여자골프가 단체전에 유독 약한 배경이다. 대비가 필요하다. 4년은 길지 않은 시간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