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 기자의 여기는 리우!] 동생들 반전샷 이끈 세리 언니의 '한마디 리더십'
“자꾸 금·은·동 싹쓸이가 목표냐고 물으시는데, 말 안 할래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골프 대표팀 코치인 박세리(37·하나금융그룹·사진)는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목표치 설정 자체가 후배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누구보다 ‘국가대표’의 무게감을 이해한다. 박세리가 정식 태극마크를 단 적은 없다. ‘세리 키즈’가 크는 동안 그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고국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했다. 통산 25승은 그 부담과의 싸움에서 받아든 훈장이다.

코치로 선임된 이후 그가 “기술적으로 조언할 건 없다”며 자세를 낮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대신 “올림픽 골프 첫 국가대표라는 심리적 부담을 얼마나 덜어내느냐가 가장 큰 변수”라며 멘탈 코치를 자처했다. 리우에서도 된장찌개를 끓이고 돼지고기를 볶아내며 아침마다 장을 봐 오는 ‘엄마 역할’이 그의 몫이었다. 그림자처럼 후배들의 뒤를 지키던 박세리의 한마디가 후배들의 ‘반전 샷’을 이끌어냈다.
[이관우 기자의 여기는 리우!] 동생들 반전샷 이끈 세리 언니의 '한마디 리더십'
팀의 둘째 양희영(27·PNS창호)은 18일(현지시간) 열린 올림픽 여자골프 2라운드에서 6언더파를 몰아쳤다. 보기는 1개로 막고 버디 7개를 쓸어담았다. 중간합계 4언더파 공동 17위. 2오버파 39위였던 1라운드 순위를 22계단 끌어올렸다.

양희영은 2라운드를 끝낸 뒤 “스윙할 때 무릎이 위아래로 출렁거린다고 세리 언니가 한마디 해줬는데 다음날 샷이 바로 잡혔다”고 신기해했다. 퍼트감까지 살아났다. 3번홀부터 6번홀까지 4개 홀 연속으로 버디 퍼트를 홀컵에 떨궜다. 멀어져가던 메달 경쟁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전인지(22·하이트진로)의 무딘 샷감을 깨워낸 데도 ‘언니의 말 한마디’가 힘이 됐다. 첫날 1언더파를 쳤지만 성에 차지 않는 성적표였다. 1라운드가 끝난 뒤 “제대로 된 샷이 하나도 없었다”고 속상해하자 박세리는 “안 되는 것은 버리고 잘되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이튿날 화끈한 이글 두 방이 터졌다. 전반 9번홀, 후반 18번홀에서다. 전반에만 보기, 더블 보기를 잇달아 내주며 휘청이던 전인지는 버디 4개까지 곁들여 6언더파를 쳤다. 순위가 19위에서 공동 8위로 껑충 뛰었다. 그는 “세리 언니의 말이 미스샷도 끌어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코치가 된 뒤 후배들에게 “부담을 느끼는 순간 부담은 더 커진다”며 올림픽을 즐길 것을 꾸준히 주문했다. 손가락 부상 때문에 대표팀 합류가 불투명했던 박인비(28·KB금융그룹)가 출전을 결심한 뒤에도 “기대치를 낮추라”며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려 애썼다. 박인비는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내리 5언더파를 쳤다. 중간합계 10언더파로 단독 선두다. 프로골프 세계에서 경기 도중 조언은 금기로 통한다. 달라진 루틴이나 평소 스윙과의 차이를 짚어주는 정도가 허용되는 범위다. 이영미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부회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게 코칭”이라며 “박세리의 아우라여서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그러나 “아직 이틀이나 남았다”며 말을 아꼈다.

첫날 5언더파 공동 2위에 오른 김세영(23·미래에셋)은 이날 2오버파를 치며 주춤했다. 공동 22위. 그는 “클럽 선택과 코스 전략이 모두 모호했다”며 “오늘 경기를 복기해 3라운드에선 타수를 확 줄이겠다”고 다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