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때부터 탁구채 잡아…지기 싫어해 별명은 '독사'

"아쉽지만 잘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18일 오전(한국시간) 한국 남자탁구 대표팀이 2016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에서 독일에 동메달을 내준 순간 정영식(24·미래에셋대우)의 가족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도 의정부시 자택에서 경기를 지켜본 정영식의 부친 정해철(52)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영식이를 만나면 안아주고 싶다"면서 "기회가 왔을 때라 미련은 남지만, 내가 보기에 실력 이상을 해낸 것 같아서 고맙다"고 말했다.

비록 메달은 놓쳤으나, 생애 첫 올림픽에 출전해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은 아들은 충분히 자랑스러웠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간판으로 우뚝 선 정영식의 탁구 '피'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정씨는 고교 1학년 때까지 탁구를 했고, 아마추어 탁구선수 생활을 10년 했다.

다섯 살 난 첫째 아들 정영식을 탁구장에 처음 데려간 것도 당연히 그였다.

정씨는 아들이 너무 순해서 운동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의정부초등학교 탁구부에 보냈다.

아들은 이듬해인 여섯 살 때부터 자신보다 큰 초등학교 1학년생들과 맞붙어서 늘 이기고 집에 돌아왔다.

'이기는 재미'를 배우며 그렇게 탁구에 빠졌다.

순진하기만 하던 소년은 어느새 동료들로부터 '독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 번 진 선수에게는 다시 지지 않는다'는 게 정영식의 지론이었다.

아버지가 20년간 지켜본 정영식은 지독한 노력파이기도 하다.

중학교 1학년 때 가만히 서 있던 정영식의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넘어지거나 맞은 것도 아닌데, 연습량만으로 비골(종아리뼈)이 나가버린 것이다.

코치에게 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혼자 토끼뜀 횟수를 계속 늘려나가다가 사달이 난 것. 결국엔 두 달 동안 깁스를 하고 쉬어야 했다.

그날 아버지는 '아들이 언젠가 뭐라도 되긴 되겠구나'고 예감했다.

한번은 정영식이 "아빠, 세계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선수가 나인 것 같아"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정성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까지 딱 2번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 따라나서 아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비디오테이프만 108개가 있다.

그런 정영식의 가족에게도 올림픽은 부담이었다.

고교 때는 실업팀에 가는 것이, 실업팀에선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국가대표가 되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목표가 됐지만, '메달'만큼은 달랐다.

아버지 정씨는 "올림픽에 나간 것만으로도 우리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부담을 줄까 봐 공항에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마룽과의 경기를 보니 아들은 목표가 출전에만 그친 게 아니었던 것 같다"고 기특해했다.

앞서 단식 16강에서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마룽과 겨룬 정영식은 아쉽게 패했으나, 뛰어난 기량으로 한국 남자탁구의 세대교체를 알렸다.

(의정부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suk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