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변’ ‘기적적인 승리’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올림픽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리는 데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폄하의 의미를 가진 말이기도 하다. 이변과 기적은 보는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일일 뿐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피나는 노력으로 일군 결과를 의외의 일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선수의 노력에 대한 모욕이다. ‘운 좋게 얻은 메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조셉 스쿨링 ⓒ gettyimages/이매진스
조셉 스쿨링 ⓒ gettyimages/이매진스
○조셉 스쿨링 : ‘나 기억 나요?’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싱가포르에 마무리 훈련 캠프를 차렸다. 펠프스가 캠프를 차린 장소에선 13살의 조셉 스쿨링이 수영 훈련을 하고 있었다. 꼬마의 우상은 펠프스. 펠프스는 사진 촬영을 권하는 꼬마와 흔쾌히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리고 8년 뒤 얄궂은 만남을 가진다. 리우올림픽 남자 접영 100m 결승전에서다.

펠프스는 이 종목 4연패이자 대회 5관왕을 노리고 있었다. 51초14로 터치패드를 찍을 때까지. 하지만 황제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8년 전의 그 꼬마 스쿨링이었다. 스쿨링은 50초39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싱가포르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

스쿨링은 펠프스를 만난 이듬해이던 14살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수영을 배웠다. 그에게 펠프스는 ‘더 좋은 수영 선수가 되기 위한 이유’였다. 그렇게 갈고 닦은 기량을 처음 뽐낸 곳은 한국이었다. 박태환과 쑨양의 대결에 카메라가 집중되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스쿨링은 접영 50m 은메달, 100m 금메달, 200m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상영 ⓒ gettyimages/이매진스
박상영 ⓒ gettyimages/이매진스
○박상영 : ‘할 수 있다’

박상영과 게자 임레(헝가리)의 펜싱 남자 에페 결승. 약관의 검객이 베테랑 검객을 맞아 10 대 14로 벼랑 끝까지 몰렸다. 곧 막을 내릴 승부였다. 그 순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은 어린 검객이었다. 박상영은 그렇게 피스톨 위의 주인공이 됐다. 우연이 아니었다.

18살이던 2013년 이미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았다. 세계 랭킹 3위까지 올라갔던 2014년엔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선배들의 장비를 물려받아 썼다. 초록어린이우산재단의 후원도 받았다. 올림픽을 앞둔 지난해 3월 가난보다 큰 시련을 겪었다.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수술 집도의조차 올림픽 출전을 반신반의했다.

박상영은 고통스러운 재활을 1년 가까이 견뎠다. 올해 2월 재활 이후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밴쿠버월드컵에선 동메달을 땄다. 재기의 신호탄을 쏜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임레를 만났다. 15 대 11, 박상영의 승리였다.
일레인 톰슨 ⓒ gettyimages/이매진스
일레인 톰슨 ⓒ gettyimages/이매진스
○일레인 톰슨 : 훈련 상대에서 결승전 상대로

프레이저 프라이스(자메이카)의 올림픽 육상 여자 100m 3연패 성공 여부는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의 3연패만큼이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일레인 톰슨이었다. 톰슨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프라이스의 연습 상대인 자신이 프라이스를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교 육상부에서 ‘너무 느리다’는 이유로 쫓겨난 지 5년 만의 일이다.

톰슨의 2011년 100m 최고 기록은 12초01. 육상 강국 자메이카의 국가대표가 되긴 힘든 성적이었다. 톰슨은 대학시절 스티븐 프란시스코 코치를 만나 자신이 뛰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이후 그녀의 기록은 2013년 11초41, 2014년 11초17로 단축된다. 10초대(10초84)에 진입했던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올해 자메이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프라이스보다 빠른 10초70을 기록하며 대표로 발탁됐다. 10초70은 올해 세계 여자 육상 100m에서 나온 기록 가운데 가장 빠르다. 톰슨은 이번 올림픽 결승에서 이보다 불과 0.01초 늦은 10초71로 우승했다.
호앙 쑤안 빈 ⓒ gettyimages/이매진스
호앙 쑤안 빈 ⓒ gettyimages/이매진스
○호앙 쑤안 빈 : 42살의 사수

진종오가 올림픽 2연패를 노리던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 올림픽 신기록(202.5점)이 나왔다. 주인공은 진종오가 아니었다. 베트남 현역 군인이자 늦깎이 사격선수 호앙 쑤안 빈이 조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그는 진종오가 3연패를 이룬 50m 권총에서도 끝까지 경쟁을 펼친 끝에 은메달을 따냈다.

호앙은 한국인 박충건 감독의 제자이기도 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예선 9위에 그쳤던 호앙은 2년 만에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박 감독은 “호앙에게 집중력 말곤 가르칠 게 없었다”고 말한다. 전자 표적조차 없는 베트남 사격팀이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2010년부터 호앙을 가르친 것은 박 감독이었다. 2014년엔 베트남 감독으로 아예 적을 옮겼다. 이후 호앙은 세계 랭킹 6위의 선수가 됐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이후 ‘감독님’이란 단어만큼은 한국어로 말한 이유다.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 gettyimages/이매진스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 gettyimages/이매진스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 오빠가 돌아왔다

‘노박 조코비치 브레이커’.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는 테니스 남자 단식 1라운드에서 세계 랭킹 1위 조코비치(세르비아)를 제압했다. 조코비치의 ‘골든 슬램(4대 메이저 대회와 올림픽 우승)’ 도전이 시작과 함께 끝나는 순간이었다.

델 포트로는 경기 시작 전 무려 40분이나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었지만 결국 대어를 낚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3, 4위전에서 조코비치를 빈 손으로 돌려보낸 것보다 이른 시점이었다. 결승에서 앤디 머레이(영국)에게 지긴 했지만 4강에서 ‘왕년의 스타’ 라파엘 나달(스페인)을 잡았다.

델 포트로 역시 ‘왕년의 스타’다. 양손목에 세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으며 변방으로 밀렸을 뿐이다. 올림픽 전 366위, 현재 141위인 세계 랭킹도 한때는 4위였다. 2009년엔 US오픈에서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당시 상대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였다. 페더러의 US오픈 연속 우승 기록은 델 포트로에게 막혀 다섯 차례에서 멈췄다.
버지니아 트래셔 ⓒ gettyimages/이매진스
버지니아 트래셔 ⓒ gettyimages/이매진스
○버지니아 트래셔 : “재미있었을 뿐”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걸린 306개의 금메달 가운데 첫 번째 금메달의 주인공. 19살의 버지니아 트래셔는 국제 무대 데뷔전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트래셔가 쏜 208.0점은 올림픽 신기록이기도 하다. 트래셔가 경쟁한 두리와 이쓰링(중국)은 각각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이번 대회 동메달을 차지한 이쓰링은 이 부문 세계 기록(211.0)을 갖고 있다. 하지만 트래셔는 첫 발부터 만점인 10.9점을 쏘며 기세를 잡았다. 은메달을 딴 두리가 1.3점 이상 뒤처지지 않으며 맹추격했지만 트래서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5년 전까지 그녀의 꿈은 ‘피겨 여왕’이었다. 할아버지와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사슴을 사냥하다 사격에 매료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방아쇠를 당길 때의 흥분감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올해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 챔피언십 우승자이기도 하다.

기적이라 말하지 말아다오…내 노력에 대한 모욕이니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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