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가 리우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보소 스타르세비치(크로아티아)를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우가 리우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보소 스타르세비치(크로아티아)를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헉,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데드포인트’ 훈련을 참아가며 4년을 준비했기에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 믿었다. 종료 30초를 남겨놓고 천금 같은 패시브 기회가 찾아왔고 상대의 허리를 잡고 중심을 뺏은 뒤 가로들기 기술로 쏜살같이 메쳤다. 전세를 뒤집는 4점짜리 이 기술은 관중석과 한국 벤치에 환호성을 자아냈다. 상대 선수는 매트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심판들의 판단은 달랐다. 2점만 인정한 채 되려 비디오 판독 요청에 따른 페널티 1점까지 주는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을 내놨다. 퉁퉁 부은 눈으로 지난 런던올림픽 한국 레슬링에 유일한 금메달을 안겼던 ‘레슬링 간판’ 김현우(28·삼성생명)의 2회 연속 금메달 꿈은 이렇게 사라졌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5㎏급에 출전한 김현우는 14일(한국시간)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2에서 열린 16강전에서 로만 블라소프(러시아)에게 5-7로 석패했다. 하지만 그는 패자부활전을 거쳐 3, 4위전에 진출해 팔꿈치가 탈골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동메달을 따냈다.

강력한 금메달 라이벌이던 블라소프와 맞붙은 이날 16강전은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 경기를 마친 김현우는 “4년 동안 오로지 금메달만 생각하며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현우는 패자부활전 출전을 위해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맸다.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뒤로하고 남은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16강전을 마치고 라커룸에서 안한봉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감독이 던진 “하늘을 감동시켜야 메달을 딸 수 있다”는 한마디 때문이었다.

부상으로 위기도 맞았다. 패자부활전에 출전한 그는 중국 양빈을 3-1로 돌려세운 뒤 3, 4위전에 출전했다. 크로아티아의 보소 스타르세비치와 치른 경기 초반 상대 공격을 저지하던 중 오른팔이 빠지는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김현우는 2피리어드 경기 막판 스탠딩 상황에서 부상한 팔로 4점을 따내는 투혼을 발휘하며 6-4로 역전승을 일궈냈다.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과 부상을 이겨낸, 금메달 이상의 값진 동메달이었다.

경기를 마친 그는 눈시울을 적신 채 ‘태극기 큰절’ 세리머니를 펼쳤다. 광복절 금메달 소식과 함께 선보이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한 세리머니였다. 매트 위에 태극기를 깔고 응원해준 국민과 가족에게 큰절을 올린 그는 “판정은 지나간 일이다. 4년 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생각나면서 아쉬워 눈물이 났다. 기대하고 있을 가족이나 국민들이 모두 응원을 많이 해줬는데 보답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안한봉 감독은 “억울하고 분하지만 현우니까 해낼 수 있었다”며 “심판 판정 시비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부상까지 겹친 상황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맞설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정신력의 승리였다”고 평가했다.

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