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기계체조·수영 사상 첫 흑인 금메달 잇따라 탄생
'여권 후진국' 이슬람권 여성 4명은 선수단 기수 맡아


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슬로건은 '뉴 월드(New World)'이다.

공존과 관용을 토대로 모든 나라가 더욱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서 내걸었다.

리우에서는 '뉴 월드' 건설을 향한 열정과 성과가 뚜렷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크게 개선됐다.

백인들이 독점해온 일부 종목에서는 흑인 여성들이 사상 첫 금맥을 캐는 기적도 만들어냈다.

이번 대회는 이념과 종교, 피부색을 초월한 '세계인의 한마당'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스라엘과 이슬람권 선수단이 빚은 일부 갈등과 미숙한 경기 운영은 리우 올림픽의 '옥에 티'로 꼽힌다.

▲ 흑인 여성 2명 '백인 아성' 접수
'백인 잔치'로 시작한 근대 올림픽에 아시아 국가가 처음 출전한 것은 1900년 파리 올림픽이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는 흑인이 첫선을 보였다.

이후 리우 대회까지 112년이 지나도록 인종차별 관행은 여전히 남았다.

미국 '복싱영웅' 무하마드 알리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우승했으나 인종차별에 시달리자 금메달을 강에 던져버렸다.

리우에서는 백인 일색인 체조와 수영에서 '유리천장'이 무너졌다.

미국의 기계체조와 수영 대표로 각각 출전한 흑인 여성 시몬 바일스(19)와 시몬 마누엘(20)이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올림픽 체조와 수영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여성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됐다.

마누엘은 지난 12일 자유형 100m 우승을 차지한 뒤 '흑인 차별'을 딛고 이룬 쾌거의 기쁨을 털어놨다.

"이 메달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나 이전에 있었던, 내게 영감을 준 모든 흑인을 위한 것이다"



여자 기계체조는 1928년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지만, 흑인이 출전한 것은 최근 일이다.

흑인 여성은 국제무대에서 간신히 두각을 보여도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점에서 바일스의 성장은 경이롭다는 찬사를 받는다.

여자 기계체조 단체와 개인종합에서 금메달을 딴 데 이어 15일에는 도마에서도 우승해 이번 대회 3관왕에 올랐다.

바일스는 내친김에 대회 5관왕에 도전한다는 각오를 보였다.

수영이나 체조의 인종 다양성 부족의 원인은 체육관과 수영장의 흑인 제한, 고비용, 흑인 롤 모델 부재 등이다.

마누엘과 바일스는 이런 악조건을 딛고 흑인 여성 선수의 이미지를 쇄신했다고 미국 CNN방송이 평가했다.

이들의 활약에 다른 흑인 선수들도 덩달아 기뻐했다.

미국 프로농구(NBA)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인스타그램에 마누엘과 바일스가 금메달을 물고 활짝 웃는 사진을 올리며 "많은 흑인 소녀들에게 영감을 줬다"며 축하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인종 장벽과 차별,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미국에서 마누엘의 금메달은 '희망'을 상징한다고 호평했다.

▲ 이슬람 여성들이 국기 들고 개막식 당당하게 입장
이슬람권 일부 국가는 여성 올림픽 출전은 물론, 경기장 구경조차 금지한다.

여성의 외부활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율법 때문이다.

대다수 여성이 이런 장벽 앞에 주저앉은 탓에 여권은 답보상태를 보였다.

여성 체육인은 예외였다.

머리에 히잡을 두르고 온몸을 덮은 운동복을 입고도 경기장에 당당하게 나섰다.

이들에게 메달과 신기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올림픽 출전 자체가 여권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눈물 어린 차별 철폐 노력은 큰 진전을 거뒀고, 그 성과는 리우에서 나타났다.

이달 5일 개막식에서 이란 양궁 선수 자하라 네마티(31)가 국기를 들고 입장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란 역사상 올림픽 여성 기수는 처음이었다.

지진으로 척추를 다쳐 하체가 마비된 네마티가 신체장애와 여성 차별에 도전했다는 사실은 개막식장에 큰 울림을 남겼다.

아랍에미리트(UAE) 역시 여성 수영선수를 기수로 내세웠다.

알제리(소니아 아셀라·유도)와 팔레스타인(마야다 알사예드·육상)도 여성을 선수단 맨 앞에 세웠다.

이슬람권 여성 기수는 이전에 매우 드물었다.

여자 펜싱 선수인 이브티하즈 무하마드(31)는 히잡을 쓰고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의 미국인이다.

무하마드는 율법을 지키되 여성 차별은 깨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머리에 히잡을 쓰고 운동복으로 몸 전체를 가린 채 펜싱장에 나타난 이유다.

사브르 개인전 16강에서 탈락했지만, 세계인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무하마드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을 대표해 올림픽 무대에 서서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SNS에는 "올림픽 출전을 통해 이슬람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

탄압받고도 제 목소리를 못 내는 이슬람 여성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라는 글을 올렸다.

경기장을 찾은 오빠 카리브는 "동생은 여성, 흑인, 이슬람교도라는 역경을 모두 극복하고 성공하겠다는 집념이 대단하다.

그는 내 영웅이다"고 치켜세웠다.

종교와 인종, 성을 차별하는 '삼중 질곡'을 깨려는 열정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국제인권단체의 집중 표적이 돼온 사우디아라비아도 과거와 달라졌다.

출전 선수는 2012년 런던올림픽 때보다 두 배 많은 4명이다.

사우디 여자 마라토너인 사라 아타르(19)의 일거수일투족에서는 올림픽을 성차별 혁파의 무대로 삼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하얀 히잡으로 머리와 목을 가리고 긴 소매 상의와 쫄바지 차림이었으나 여성 인권 개선에는 큰 목소리를 냈다.

마라톤 기록은 선두권에 약 1시간 뒤지지만, 개의치 않는다.

올림픽 마라톤에 처음 출전했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금녀의 벽'을 깬 만큼 여성 마라토너의 걸림돌을 걷어냈다는 데 만족한다.

여성의 올림픽 출전을 비판하는 여론은 철저히 무시한다.

여성 선수들은 SNS 비난 글을 읽지 말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쓰지 말도록 동료들에게 조언했다.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이니까 경기에만 집중하라"는 메시지도 전했다.

이런 도전은 '여권 후진국' 사우디에서 성과를 내는 조짐이 나왔다.

여성에게 금기인 체육을 여학교 정식 과목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논의가 최근 시작됐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스포츠 세계에서 사우디 여성은 가장 높은 산을 오르고 가장 긴 강을 건널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이뤘다"며 "사우디 체육회에 여성부서를 신설한 것도 반가운 변화다"라고 호평했다.

리우 올림픽은 난민팀을 배려하고 여성과 인종 차별을 크게 개선했다는 점에서 명실상부한 '지구촌 대축제'라는 평가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안팎에서 나온다.

(리우데자네이루 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