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경기 출장에 214경기 컷 통과…성실과 근면의 대명사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12년째 뛰는 김보경(30·요진건설)이 뜻깊은 기록 수립을 앞두고 있다.

김보경은 제주에서 열린 삼다수 마스터스에 출전하면서 지금까지 236개 대회 출장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236경기 출장은 김희정(45)이 가진 KLPGA투어 최다 경기 출장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한 차례 더 대회에 나서면 김보경은 KLPGA투어 최다 출장 선수라는 빛나는 훈장을 달게 된다.

김보경은 이미 최다 컷 통과 신기록은 세운 지 오래다.

삼다수 마스터스에서도 컷을 통과한 김보경은 214경기 컷 통과라는 기록의 보유자다.

지금까지 받은 상금만 21억6천800만원이다.

KLPGA투어에서 상금을 20억 원 넘게 번 선수는 8명뿐이며 김보경보다 더 번 선수는 김하늘, 유소연, 이정민 등 3명밖에 없다.

골프에서 최다 출장과 최다 컷 통과는 실력이 따르지 않으면 이루기 어렵다.

김보경은 12년 동안 투어 출전 자격을 굳게 지켰기에 가능했다.

김보경은 KLPGA투어에서 근면·성실의 대명사다.

대회장에 딸린 연습 그린에 가장 오랫동안 머무는 선수로 정평이 났다.

삼다수 마스터스 대회장에서 김보경을 만난 장소도 연습 그린이었다.

36도에 이르는 가마솥더위에도 아랑곳없이 퍼팅 연습을 하던 김보경은 투박한 부산 말씨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그러나.

신경 쓸 일 아니다"며 심드렁하게 말문을 열었다.

김보경은 "원래 골프에 소질도, 흥미도 없었다.

재능도 없을뿐더러 몸도 약골이고 체력도 약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털어놨다.

김보경은 "남보다 연습을 많이 했고 정신력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시드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버는 상금이 쓰는 돈보다 적어지면 미련없이 골프를 그만두겠다"면서 "골프를 그만두면 골프와 관련된 일은 절대 하지 않고 닭이나 오리 키우면서 살겠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다음은 김보경과 일문일답.
-- 최다 출장 신기록을 앞둔 소감은 어떤가.

▲ 투어 생활을 끝내고 나면 값진 거겠지만 당장 중요한 건 당장 지금 눈앞에 닥친 대회에서 성적 내는 것이다.

한 대회, 한 대회 성적이 좋다 보면 또 오래 뛸 수 있는 거 아니냐.
-- 이렇게 오랜 기간에 꾸준한 성적을 내온 비결은 뭔가.

▲ 비결이랄 게 없다.

난 늘 똑같이 한다.

겨울훈련, 대회장 나와서 하는 연습 등은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 시즌 때마다 어떤 목표를 설정하나?
▲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는 목표치가 있다.

예를 들자면 상금 20위 안에는 최소한 들어야겠다는 선을 긋는다.

그것 말고는 특별한 건 없다.

--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 적은 없나.

▲ 한 번도 없다.

-- 가장 늦게까지 연습 그린에 남아 있는 선수로 유명하다.

▲ 요즘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열심히 하는 선수가 많다.

스물여덟 살, 스물아홉 살 무렵부터 마음은 하고 싶어도 몸이 안 따라지더라. 또 그때부터 대회가 많아지기도 했다.

-- 후배들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나?
▲ 무슨 책임감이냐. 그런 건 없다.

다만 나 같은 선수가 더 오래 버티면 우리 아래 세대들이 본받지 않을까.

사실 20대 초반일 때는 선배들이 스물다섯만 넘어도 은퇴하곤 했다.

선수 수명이 길어진 게 내 또래 선수들부터 아닌가 싶다.

앞으로 선수 수명은 점점 더 길어질 것 같다.

-- 언제까지 선수로 뛸 생각인가.

▲ 원래 10년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더 하게 됐다.

스스로 지쳐서 못하게 될 때면 그만두겠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하지 않을 생각이다.

-- 투어에서 버티지 못하면 그만둔다는 얘긴데 그게 언제가 될 것 같나?
▲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

시드를 잃으면 시드전 가지 않고 그만두겠다.

시드도 지키지 못할 수준이라면 그만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시드를 유지한다 해도 버는 상금보다 쓰는 게 더 많다면 그만두겠다.

-- 출장 대회도 많지만 컷 탈락이 거의 없다.

체력 소모가 대단할 텐데 어떻게 버티나.

▲ 컷 탈락이 없긴 하다.

1년에 두번 정도 떨어지는 것 같다.

(김보경은 236경기에서 22차례 컷 탈락했다.

) 원래 약골이다.

체력도 형편없다.

골프 하면서 운동해서 이만큼 된 거다.

다 정신력이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정신력이다.

지구력과 참을성은 나도 인정한다.

이랬든 저랬든 컷은 통과하자며 포기하지 않는다.

힘들 때도 있어도 참고 견딘다.

-- 골프는 어떻게 하게 됐나.

▲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친구 권유로 시작했다.

재미도 없었고 잘하지도 못했다.

시키니까 해야 하나 보다 하고 그냥 쭉 했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 골프에 재능이 없었다는 말인가.

▲ 운동 신경이 둔하고 골프 감각도 없었다.

주니어 시절에 상비군, 국가대표 한번 못해봤다.

주요 대회 우승 경력도 없다.

대회에 나가면 컷 통과하기에 바쁜 선수였다.

-- 그런데 어떻게 프로 선수가 되어서 이렇게 오랫동안 활약하나.

▲ 노력형이다.

노력했다.

그리고 늘 절박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

내가 주니어 시절에 국가대표나 상비군 하던 선수 중에 지금 투어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덜 절박했거나 덜 집중했다면 나도 남아 있지 못했을 거다.

-- 그래도 이렇게 오래도록 투어에서 활약하며 중요한 기록을 세웠는데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지 않나.

▲ 내게 칭찬할 게 별로 없다.

계속 왜 이거밖에 못 하지? 이거밖에 안 되지? 라며 채찍질할 거 말고는…
-- 골프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 메이저대회 우승 말고는 없다.

-- 그동안 해외 투어 진출 생각은 없었나.

▲ 내가 도전 정신이 없다.

어릴 땐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한국도 힘든데 내 체력으로 말도 안 통하는 외국 가서 성공할 자신이 없다.

-- 인간 김보경의 꿈은 뭔가.

▲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못했던 거 해보면서. 유명해지고 누가 나 알아보고 그런 거 싫다.

낯 많이 가린다.

시골 가서 집이나 닭이나 오리 키우면서 살고 싶다.

-- 은퇴하면 골프 관련 일을 하고 싶지 않나?
▲ 전혀. 은퇴하면 골프 관련 일은 절대 않는다.

-- 결혼 계획은 없나?
▲ 전혀 없다.

골프 그만두자마자 결혼이라도 하면 내 인생은 어디서 찾나? 남자에 관심도 없다.

-- 올해 성적은 어떻게 평가하나?
▲ 더 잘하고 싶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면 선수 아니다.

사실은 작년에 너무 잘했다.

올해는 너무 욕심내니까 더 안되더라.
-- 캐디를 맡는 아버지와 실, 바늘 관계다.

아버지께 언제까지 캐디를 맡길 건가.

▲ 아버지가 승부 근성은 나보다 더하다.

처음엔 왜 이거 밖에 못하냐고 닦달하곤 했다.

3, 4년 전부터는 전적으로 내게 맡긴다.

전문 캐디에 맡겨보려 했지만 나도 불편하고…티격태격해도 아빠가 그래도 낫더라. 인제 와서 그만두라고 하면 서운해하실 것 아닌가.

끝까지 가야 할 것 같다.

아버지도 4승을 했으니 투어에서 인정받는 캐디 아니냐.
--요즘 투어에서 실력보다 외모로 주목받는 선수가 늘어났는데 고참 선수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 예쁘면 좋지 않나.

보는 사람들도 좋고. 본인 성격인 것 같다.

꾸미는 거 좋아하는 거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할 일이 아니다.

나는 그런데 꾸미는 데 관심 없다.

대회 때 아니면 맨날 트레이닝복 입고 다닌다.

하하.


(제주연합뉴스) 권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