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스무 살답지 않게 성숙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오지현은 “친구들과 밤새 수다 떨 때와 배우 강동원을 볼 때면 가슴이 설레는 평범한 여대생”이라며 “골프 외에는 진짜 순둥이”라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만 스무 살답지 않게 성숙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오지현은 “친구들과 밤새 수다 떨 때와 배우 강동원을 볼 때면 가슴이 설레는 평범한 여대생”이라며 “골프 외에는 진짜 순둥이”라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처음 골프채를 잡은 날 감이 딱 왔습니다. 연습장 주인이 집에 안 가느냐고 짜증을 내서 보니 여섯 시간이나 지났더라고요. 호호!”

어릴적 별명이 ‘까칠이’라고 했다. 커다란 눈망울과 새초롬한 입매, 하얀 피부를 가진 그에게 친구들이 붙여줬다는 애칭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만은 아닌 듯했다. 한 번 호기심을 느끼면 될 때까지 끝장을 보는 그의 성격을 본인의 입을 통해 듣고서다. 주인공은 지난달 26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비씨카드·한경레이디스컵 2016’ 대회를 짜릿한 역전승으로 제패한 오지현(20·KB금융그룹)이다. 미녀골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8층 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것 같아”

그는 당시 우승한 직후 골프의 ‘남아 있는 반쪽’을 봤다고 했다. 오지현은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장타소녀’ 성은정(17·금호중앙여고)에 4타 뒤진 9언더파로 18번홀을 나섰다가 승부를 뒤집는 역전 드라마를 썼다.

“새삼 느끼지만 골프는 장갑을 벗기 전까지 정말 모른다는 말을 그때만큼 뼈저리게 깨달은 적이 없었습니다. 변화무쌍한 골프의 매력을 더 실감한 거죠.”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6] 우승자 오지현 인터뷰 "골프채 처음 잡은 날 6시간 휘둘러…한 번 시작하면 끝장 봐"
오지현 역시 지난 3월 베트남에서 열린 KLPGA투어 달랏앳1200레이디스챔피언십에서 3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다가 조정민(22·문영그룹)에게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이후 겪은 게 생각의 변화다.

“기다리는 골프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상대방이 누구든 나만의 플레이를 하다 보면 기적과 같은 선물이 온다는 확신이랄까. 왠지 앞으론 마인드 컨트롤이 잘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주변 시선도 확 달라졌다. 대회가 끝난 직후 친구들과 서울 잠실로 야구경기를 보러갔던 때다. 그를 알아본 ‘아재 팬’들의 사인 요청 공세로 하마터면 경기를 못 볼 뻔하는 유명세를 치렀다. 두산의 열성팬인 그는 “사복을 입고 갔는데도 여기저기서 알아보더라”며 웃었다.

◆클럽 처음 잡은 날 6시간 ‘불꽃연습’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6] 우승자 오지현 인터뷰 "골프채 처음 잡은 날 6시간 휘둘러…한 번 시작하면 끝장 봐"
어릴 적 꿈이 흉부외과 의사였다니 의외다. 까다로운 문제를 풀수록 더 강렬한 흥미를 느껴서란다. 집요하게 IQ(지능지수)를 물어보니 중학교 때 143이 나왔다고 한다. “친구는 물론 가족까지 아무도 믿지 않지만…”이라며 그는 까르르 웃었다.

“수학이랑 과학을 특히 좋아했어요. 경시대회에 나가서 금상을 타고, 전교 1등도 해봤고요. 그래서 학원 영어선생님이던 아빠(오충용·49)와 수학선생님이던 엄마(천미영·45)가 여러 번 다투기도 했습니다. 하하.”

골프채를 잡은 건 아버지 덕분이다. 어느날 갑자기 골프연습장에 가보자고 한 게 계기다. 철인3종경기 마니아로 전국체전에까지 나간 아버지는 운동선수의 꿈을 딸이 대신 이뤄주길 기대했다고 한다. 오지현도 한때 철인3종경기를 뛰었다.

“숨찬 뒤 찾아오는 희열이 매력이라는데 전 너무 숨이 차서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골프는 잘 맞지 않을수록 신기하게 승부욕이 더 생기는 거예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그런 식으로 덤벼들었죠.”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나간 대회는 그의 ‘승부욕’에 불을 지폈다. “저는 90대를 치는데 또래들이 70대 타수를 치며 우승하는 걸 보니 스스로에게 분통이 터지는 거예요. ‘골프 그만하자’는 엄마에게 ‘이렇게는 못 그만둔다’며 매달렸습니다.”

이후 연습용 야구배트를 하루 1000번씩 휘둘렀다. 손바닥이 찢어져 숟가락을 들지도 못할 만큼 독하게 스스로를 다그쳤다. 2013년 그는 함께 경기했던 친구들보다 일찍 골프 국가대표 마크를 달았다.

◆“2년 뒤 LPGA 진출 기대하세요”

‘컴퓨터 샷’을 뽐내는 그지만 드라이버 정확도를 높이는 건 여전히 숙제다. “드라이버는 쇼고 퍼팅은 돈이라고 하지만 저는 드라이버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세컨드샷이든 퍼팅이든 드라이버가 강해야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여자프로골퍼라면 누구나 꿈꾸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진출도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기회가 닿으면 일본 투어를 우선 뛰어볼 계획이다. 오지현은 “한국을 오가기가 가깝고 프로골퍼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훨씬 좋다고 들었다”며 “LPGA는 대학 공부를 마친 2년 뒤에나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좌우명은 뭘까. “피겨스케이팅 스타 김연아 선수의 말이 어느날 귀에 쏙 들어왔어요. ‘100도가 아니면 물은 끓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더라고요. 그만하면 됐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야죠.”

▶오지현 프로 영상 인터뷰 보기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찍으면 ‘한경텐아시아(티비텐)’를 통해 영상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찍으면 ‘한경텐아시아(티비텐)’를 통해 영상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