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독도서 나눔 대국…바둑 보급과 기부 위한 이벤트
"이세돌과 네점 접바둑 둬 '박살'…승자 500만원, 패자 1천만원 기부"

"한국 사람이 한국 땅에서 바둑 한판 두는데 문제 될 게 있나요."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세계적인 화제가 된 이세돌 9단은 "독도에서 대국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가수 김장훈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중국 을조리그 직후의 스케줄인데도 흔쾌히 수락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 대국으로 생겨난 바둑 열기를 이어가고, 상금을 기부해 나눔에 동참하는 취지"라는 김장훈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두 사람은 오는 28~30일 사이 하루를 골라 독도에서 특별 대국을 펼친다.

날씨에 따라 독도 입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대국 일자를 확정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대국은 2인 1조 페어 바둑 형식으로 치러진다.

이세돌 9단과 여류 아마 기사이자 바둑 캐스터인 장혜연이 한팀, 김장훈과 아시안게임 페어 바둑 금메달리스트인 이슬아 4단이 한팀으로 대결한다.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인터뷰한 김장훈은 "한국 바둑의 랜드마크인 이세돌 9단과 한국기원 홍보대사인 제가 바둑 보급과 나눔을 위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관광지' 독도에서 바둑을 한판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국 장소의 특별함에 대해선 "나는 한국이 실효 지배하는 독도가 우리의 대표 관광지라고 생각한다"며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필요도 없고 여느 관광지를 찾듯 많이 놀러 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이벤트에는 '독도 나눔 대국'이란 타이틀을 붙였다.

김장훈과 이세돌 9단은 승자팀이 500만원, 패자팀이 1천만원을 내 1천500만원을 마련하고 후원금을 더해 기부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김장훈은 "상금을 교차 기부하는데 지는 쪽은 기부를 많이 해서 좋고, 이기는 쪽은 이겨서 좋다.

나눔을 솔선수범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승부의 세계에선 긴장감이 필요하다"고 웃었다.

이세돌 9단 팀과 월등한 실력 차로 뻔한 승부가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페어 바둑의 묘미를 강조했다.

"실력 차는 당연하죠. 하지만 페어 바둑은 2인 1조로 각자 순서대로 한 수씩 두는데 같은 팀끼리 상의할 수가 없어요.

프로 기사가 아무리 잘 둬도 같은 팀의 아마 기사가 그 수를 읽지 못하면 악수가 돼죠. 변수가 많아 굉장히 재미있을 거예요."

그는 "이슬아 4단이 어린 시절 천재 기사로 주목받은 페어바둑 금메달리스트이고 난 이번 대국을 위해 한국기원 사이트에서 바둑을 하루 10판씩 두며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 5단인 김장훈은 한국기원 홍보대사 자격으로 이세돌 9단의 알파고 대국에서 객원 해설로 참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친분은 없었다.

이후 김장훈이 이세돌 9단을 조명하는 한 방송에서 그를 4시간가량 인터뷰하면서 안면을 텄고, 사석에서 두세 번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통했다.

"이세돌 9단은 까칠하고 독선적인 것 같지만 무척 '쿨' 했어요.

룰과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합리적인 사람이었죠. 소신도 뚜렷했고요."

3주 전 김장훈과 저녁 식사를 한 뒤 헤어지려던 이세돌 9단은 "집에서 바둑 한판을 두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자신이 지면 "독도에서 바둑을 두고서 노래를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김장훈이 4점을 먼저 놓고 뒀지만 당연히 두 판 모두 초반 '박살'이 났다.

이어 이세돌 9단은 "내기하지 말고 한판 하자"며 김장훈에게 지도대국을 해줬다.

"전체 그림을 그리며 원하는 방향으로 판을 움직이는데 정말 소름이 끼쳤어요.

프로 기사들은 애제자랑도 세 판을 안 둔다는데 영광이었죠. 지도대국 한번 받고 제가 바둑 사이트에서 3일간 30승 1패를 했어요.하하."

김장훈이 바둑알을 처음 잡은 건 7살 때다.

몸이 아파 8~10세 때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아마 5단이던 주치의와 바둑을 뒀고 퇴원을 해서는 세탁소 아저씨 등 동네 어른들과 대결해 재능있다는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보통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을 선망하는데 난 과학자, 바둑기사, 몸이 약해 스포츠 선수가 꿈이었다"며 "공연 때 많이 뛰는 이유도 어린 시절 잠깐만 뛰어도 쓰러진 한풀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무늬만 한국기원 홍보대사가 아니라며 바둑 보급에 큰 의미를 둔 남다른 소신도 밝혔다.

"바둑을 두면 머리는 물론 집중력과 창의력이 좋아진다는데 제 생각엔 'EQ'(감성지수)가 향상되는 것 같아요.

바둑에서 지면 화가 나지만 복기하고 마음을 정리하면서 끝없이 패배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죠. 분노조절 장애로 멍든 사회인데 아이들이 도와 예가 바탕이 된 바둑을 접하면 인성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번 독도 대국에는 이세돌 바둑 연구소의 기재(바둑 재능)가 있는 어린이 10명이 참여한다.

상금과 후원금의 기부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사회 여러 곳에 두루 나눠 쓰고 싶다고 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