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혈투 끝에 역전 우승 드라마 쓴 'K브러더스'

불굴의 늦깎이 골퍼, 미 PGA 웰스파고 챔피언
통산 2승 모두 연장서 승리…강심장 샷으로 슬럼프 탈출

21세 골프 유목민, 유럽투어 하산트로피 우승
18번 홀 벼랑 끝 승부서 세 홀 연속 버디 퍼트 '쏙쏙'
제임스 한(왼쪽)과 왕정훈(오른쪽)이 9일 각각 PGA투어와 EPGA투어에서 연장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제임스 한이 웰스파고챔피언십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뒤 캐디와 포옹하고 있다. 하산2세트로피에서 우승한 왕정훈은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했다. 연합뉴스

제임스 한(왼쪽)과 왕정훈(오른쪽)이 9일 각각 PGA투어와 EPGA투어에서 연장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제임스 한이 웰스파고챔피언십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뒤 캐디와 포옹하고 있다. 하산2세트로피에서 우승한 왕정훈은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했다. 연합뉴스

‘K브러더스’의 날이다. ‘말춤 추는 승부사’ 제임스 한(35·한국명 한재웅)과 ‘골프 노마드(유목민)’ 왕정훈(21)이다. 변방의 골퍼로 ‘눈물 젖은 빵’을 씹던 이들이 같은 날 드라마 같은 명승부를 연출하며 동시에 역전 승전보를 보내왔다. 9일(한국시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유럽프로골프(EPGA)투어에서다.

제임스 한과 왕정훈은 해외 투어를 떠돌며 오랜 기간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2부 투어인 웹닷컴투어에서 주로 활동한 제임스 한은 33세에 PGA투어 첫 승을 따낸 대기만성형 골퍼다. 올 시즌에도 8개 대회 연속 예선 탈락이라는 지독한 부진으로 내리막길을 탔지만 15개월 만에 기어코 두 번째 우승의 반전을 일궈냈다. 왕정훈은 중학교 때 필리핀 유학을 떠난 뒤 국내 팬에겐 낯선 아시안투어에서 주로 활동하며 기량을 쌓았다. 2018년까지 EPGA투어 출전권을 확보한 그의 거점은 이제 주류 무대 한가운데다.

강심장 제임스 한, 그린마일 정복

PGA투어 웰스파고챔피언십(총상금 730만달러·약 85억원)이 열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할로골프장(파72·7575야드)은 난코스로 악명 높다. 16~18번홀은 ‘그린마일’(사형수의 마지막 길)로도 불린다. 제임스 한은 침착하게 그린마일을 정복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는 이날 이글 1개와 버디 3개, 보기 3개로 2타를 줄였다. 최종합계 9언더파로 로베르토 카스트로(미국)와 연장전에 들어갔다. 승부사 기질이 다시 발동했다. 18번홀(파4)에서 열린 첫 번째 연장전에서 침착하게 파를 기록했다. 반면 생애 첫 우승을 앞두고 흔들린 카스트로는 티샷을 물에 빠뜨리는 등 난조를 보이며 무너졌다. 15개월 만에 우승한 제임스 한은 보기에 그친 카스트로를 제치고 우승 트로피와 상금(131만4000달러·약 15억30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2003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는 9년 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12년 PGA 2부 투어인 웹닷컴투어 렉스호스피털에서 우승했지만, 지난해 2월 PGA투어 노던트러스트오픈을 제패하며 1부 투어 첫 승을 올리기까진 3년이 걸렸다. 두 대회 모두 연장전 접전 끝에 따낸 값진 승리였다. 그는 이번 연장전 승리로 연장전 3전 전승의 사나이가 됐다.

그는 지난해 PGA투어 첫 우승 전까지 부동산 중개인, 골프용품 매장 점원으로 일하는 등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대회 참가비를 마련했다. 지난해 첫 승을 기록했지만 올 시즌에는 8개 대회 연속 커트 탈락하는 등 심각한 슬럼프를 겪었다. 지난해 ‘말춤 우승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유쾌한 승자를 연출했지만 이번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제임스 한은 “어머니날 우승이다. 가족에게 감사하다. 다시 우승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18번홀 3연속 버디, EPGA 안착

왕정훈은 같은 날 EPGA투어 하산2세트로피(총상금 150만유로·약 19억9000만원) 최종 4라운드에서 세 번 연속 18번홀 버디를 잡으며 연장전 우승을 따냈다. 그는 이날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5위로 4라운드를 시작했다. 대회장인 모로코 라바트의 로열골프다르에스살람(파72·7487야드)에선 비가 내렸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버디 3개, 보기 1개를 묶어 2언더파 70타를 쳐 최종합계 5언더파를 기록했다. 18번홀(파5)에서 극적인 버디 퍼팅을 성공시켜 나초 엘비라(스페인)를 연장전에 끌고 갔다.

왕정훈은 18번홀에서 진행된 연장 첫 번째 홀에서 티샷을 러프로 보내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10m 거리의 버디 퍼팅을 성공시키며 재연장전을 이끌어냈다. 두 번째 연장전에선 본 경기 18번홀에서 기록한 것과 비슷한 6m짜리 버디 퍼팅에 또다시 성공하며 우승과 상금 25만유로(약 3억3000만원)를 차지했다. 2018년까지 EPGA 출전권도 확보해 골프 노마드 생활을 끝낼 수 있게 됐다.

그는 “연장전에서 심리적으로 불안했다”며 “평소 ‘기회는 계속 오니까 순위에 얽매이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기억나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주니어 시절 김시우(21·CJ오쇼핑)와 라이벌로 국내 무대를 주름잡던 왕정훈은 중학교 때 필리핀으로 유학을 갔다. 프로로 데뷔한 2012년 중국프로골프(CPGA) 상금왕을 차지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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