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박
애니 박
박인비(28·KB금융그룹) 전인지(22·하이트진로) 김세영(23·미래에셋) 장하나(24·비씨카드). 껄끄러운 세계 최강급 한국 선수가 대거 불참했다. 이쯤 되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결론은 ‘아니오’였다. 이번엔 ‘한국계’ 선수들이 순위표 윗자리를 줄줄이 꿰차고 나섰다. 모처럼 우승컵을 노리던 모건 프레셀과 스테이시 루이스 등 미국 ‘토종 강자’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한 꺼풀 벗기면 또 나타나는 ‘양파껍질 K골프’의 장벽에 또다시 맞닥뜨린 것이다.

맨 앞의 장벽은 한국계 애니 박(21·한국명 박보선)이다. 6일 미국에서 개막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요코하마타이어클래식(총상금 130만달러) 1라운드에서 애니 박은 5언더파 67타로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롯데챔피언십에서 통산 2승을 차지한 이민지(20·하나금융그룹)와 같은 성적이다. 선두인 레티시아 베크(이스라엘)와는 2타 차다.

애니 박은 이날 전반 7번홀까지만 버디 5개를 뽑아내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이후 보기 2개, 버디 2개를 맞바꿔 타수를 더 줄이진 못했지만 바람이 강했던 점을 감안하면 빼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애니 박은 올해 갓 데뷔한 루키다. 하지만 일찌감치 ‘전인지와 신인왕 경쟁을 펼칠 거의 유일한 상대’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실력도 어느 정도 검증됐다. 미국대학스포츠연맹(NCAA) 사상 일곱 번째로 대학(USC) 1학년 때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지난해 2부투어인 시메트라투어에서는 3승을 올리며 상금왕과 신인왕을 독식했다.

하지만 올 시즌 출전한 9개 대회에서 다섯 차례만 예선을 통과하는 등 기대만큼의 성적을 보여주지 못해 “거품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에 시달리기도 했다. 애니 박은 “바람이 강하게 불고 내리막이 많아 샷은 물론 퍼팅까지 힘들었다”며 “오늘은 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다”고 말했다.

비키 허스트
비키 허스트
어머니가 한국인인 비키 허스트(26·미국)도 모처럼 선두 경쟁에 가세했다. 3언더파 69타로 프레셀과 함께 공동 5위다. 그는 고등학생 때인 2008년 2부투어에서 5승을 올려 2009년 LPGA 1부투어에 데뷔한 중고참 골퍼다.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2014년 상금랭킹 162위에 그쳐 지난해 2부투어로 내려갔다. 올해 다시 정규투어에 복귀한 그는 “구원받은 느낌이다. 꼭 1부투어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며 단단한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이날 버디 7개로 7언더파를 친 단독 선두 베크는 이스라엘인으로는 미국 프로골프 무대에 처음 진출한 ‘이스라엘의 희망’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그의 LPGA 정규투어 진출을 격려하는 취지에서 군입대 의무를 연기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톱10’에는 여전히 한국 선수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2014년 우승자인 허미정(27·하나금융그룹)과 유소연(26·하나금융그룹), 최운정(26·볼빅)이 나란히 2언더파 70타로 공동 8위에 올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