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레스할 때에는 꼭 즉석복권 긁는 기분이 드는데, 저만 그런가요? 하하.”

기능성 스포츠웨어 전문회사애플라인드의 김윤수 대표(57). 최근 경기 안산 대부도의 아일랜드CC에서 만난 그는 마치 처음 골프장에 온 ‘왕초보’처럼 들떠 있는 듯했다. 1991년 잘나가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한 섬유회사를 연매출 200억원대의 견실한 중소기업으로 키워오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다. 하지만 아직도 골프만큼 자신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티샷을 하면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잖아요. 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어프로치요?…못 친 퍼트가 잘 친 칩샷보다 낫죠"
◆남이 행복해야 진짜 골프

그는 ‘비움의 골프’를 즐긴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면 인생이 달라지듯, 골프도 그렇다는 게 김 대표의 신념이다. 그는 언제부턴가 연습장에 가지 않는다. 기대감을 아예 갖지 않기 위해서다. “못 쳐도 본전이잖아요. 마이너스가 없는 거죠. 공이 잘 맞으면 복권 탄 거나 마찬가지고요. 안 맞으면 동반자들이 즐거워하니까 좋은 거고요, 하하!”

김윤수 대표는 퍼팅은 물론 샷할 때도 체중을 오른발에 둔다. 샷 정확도를 높이려면 좌우로 오락가락하느니 무게중심을 한곳에 두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김윤수 대표는 퍼팅은 물론 샷할 때도 체중을 오른발에 둔다. 샷 정확도를 높이려면 좌우로 오락가락하느니 무게중심을 한곳에 두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골프채를 처음 잡았을 땐 그 역시 ‘미쳤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친구들과 내기 골프도 즐겼다.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 잠까지 설쳤다. 지독한 연습 덕분에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홀인원 두 번에 한때 2언더파까지 쳤다.

김 대표는 원래 사이클 선수를 꿈꿨다. 서울에서 고향인 강원 원주까지 200㎞가 넘는 길을 사이클을 타고 부모님 몰래 밤새 왕복하고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그의 심장박동수는 분당 58~62회 수준으로 세계적인 마라토너들과 비슷하다. 비거리 270~280야드가 쉽게 나오다 보니 세컨드 샷은 대개 웨지로 해결했다. 스코어가 안 줄래야 안 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스트레스였다. 경쟁심이 심신을 해치고 있었다. ‘아, 이게 아닌데!’ ‘거꾸로 골프’를 쳐보자고 다짐했다. 마음속에서 스코어부터 버렸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OB를 내도, 뒤땅을 쳐도 더 이상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동반자들은 “이 양반이 왜 그래?” 하다가도 내심 즐거워했다. 그 동반자들은 그와 다시 치고 싶어 했다. ‘남을 기쁘게 하는 골프’가 그때부터 시작됐다.

◆비즈니스와 골프는 똑같아

그의 특기는 퍼팅이다. 잡는 둥 마는 둥 살살 잡는 그립이 첫 번째 비결이다. 홀컵을 서너 번 보고 거리를 계산한 다음 ‘잡생각이 들기 전에’ 곧바로 퍼팅하는 초고속 퍼팅 스타일이다.

두 번째가 오픈 스탠스다. 왼발과 왼쪽 몸통을 칩샷 어드레스를 하듯 많이 열어놓고 퍼팅하는 게 독특하다. “아마추어는 머리를 자꾸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차라리 미리 머리와 몸통을 열어 두면 최소한 머리가 공을 따라가서 실수하는 일은 줄어들 거 아닙니까.”

그린 가까운 러프에서도 웬만하면 퍼터를 쓴다. “긴 풀만 아니면 그린 에지 3~4m 이내에 있는 공은 퍼터로 쳐서 어프로치를 해요. ‘못 친 퍼트가 잘 친 칩샷보다 낫다’는 말이 있는데 진짜 그래요.”

장점은 뒤땅과 토핑이 없다는 점이다. 퍼터에도 로프트각(3~4도)이 있어 살짝 찍어치면 조금 긴 러프도 넘겨서 ‘칩 앤드 런(chip&run)’도 할 수 있다.

김 대표는 30년 한우물만 판 기능성 스포츠웨어 전문가다. 땀은 쏙쏙 빨아들이되 외부 수분은 스며들지 않는 ‘드라이 큐브’ 기술을 적용한 ‘웜 메이트’를 홈쇼핑에서 한 시간에 12억7000만원어치를 팔았다. 홈쇼핑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박인비 김효주 이보미 등 글로벌 골프스타는 물론 양궁, 태권도, 쇼트트랙 국가대표들도 직접 사서 입는 ‘필수’ 경기용품이 드라이 큐브 제품이다.

“조던 스피스 후원사인 미국의 언더아머는 1996년 첫해 매출이 1만6000달러였어요. 지금은 3조원으로 덩치가 커졌죠. 기능성 섬유 기술은 한국이 톱인 만큼 애플라인드도 언더아머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게 꿈입니다.”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에선 동업자의 배신으로 공장을 통째로 빼앗겼다.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무장 강도를 네 번이나 당해 섬유제품을 몽땅 날리기도 했다. ‘산과 골짜기’가 많은 골프가 비즈니스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다.

“상황판단 능력과 전략이에요. 지를 것이냐 말 것이냐. 그 결정이 리스크 관리 전략에서 나오거든요. 골프도 마찬가지예요.”

자신 없는 샷(사업)을 시도하면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스코어를 까먹지 않는 전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몇 년간 밤잠을 못 자면서 개발한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기다릴 때의 그 설렘이 첫 홀에서 어드레스할 때랑 똑같아요. 그 맛에 골프치는 거죠.”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어프로치요?…못 친 퍼트가 잘 친 칩샷보다 낫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