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스피스(오른쪽)가 11일 막을 내린 제80회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대니 윌렛에게 그린 재킷을 입혀주며 축하하고 있다. 윌렛은 5타 차 열세를 뒤집고 대역전승을 연출했다. AFP연합뉴스
조던 스피스(오른쪽)가 11일 막을 내린 제80회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대니 윌렛에게 그린 재킷을 입혀주며 축하하고 있다. 윌렛은 5타 차 열세를 뒤집고 대역전승을 연출했다. AFP연합뉴스
“18개홀 모두가 ‘아멘 코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뒷심 빛난 윌렛, 역전우승…다잡은 그린재킷 넘겨준 스피스
절대 강자가 없는 게 골프다. 영웅이 희생양으로, 패자가 승자로 바뀌는 변화무쌍한 드라마에 갤러리들은 탄식하고 열광한다. 세계 최강 골프 고수들의 축제인 ‘명인열전’ 마스터스는 특히 그렇다. 아멘 코너로 이름 붙은 11~13번홀을 비롯해 코스 곳곳에 숨은 ‘공포의 덫’이 ‘어떤 드라마’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덫에 ‘골든 보이’ 조던 스피스(미국)가 걸려들었다. 손에 쥘 것 같았던 마스터스 2연패의 꿈은 12번홀 ‘쿼드러플 보기’에 덜미를 잡히며 물거품이 됐다.

○“으악! 쿼드러플 보기”

조던 스피스
조던 스피스
11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마스터스 토너먼트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스피스는 전후반 ‘극과 극’의 경기를 펼친 끝에 1오버파를 쳤다. 버디를 7개나 잡았지만 보기 4개에다 예상치 못한 쿼드러플 보기까지 터져나오면서 쌓아둔 타수를 모두 까먹었다. 최종합계 2언더파 286타를 친 스피스는 영국의 노장 리 웨스트우드와 함께 공동 2위로 경기를 마감했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경기를 시작한 스피스의 전반은 독주에 가까웠다. 전반에만 버디 5개, 보기 1개를 묶어 4타를 줄였다. 6번홀부터 9번홀까지는 4개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2위 그룹과의 격차를 5타까지 벌렸다. 치밀한 코스 분석과 계산된 샷, 냉정한 자기통제로 오거스타 코스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듯했다. 그는 대회에 앞서 “한 해에 모든 메이저대회를 우승할 수도 있다”며 큰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0번홀과 11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적어내며 삐걱대기 시작한 그는 12번홀(파3)에서 생애 최악의 사고를 치고 말았다. 티샷은 그린 앞 연못에 빠졌다. 1벌타를 받고 시도한 세 번째 샷은 뒤땅이 났다. 공은 다시 연못으로 들어갔다. 다시 1벌타를 받고 친 다섯 번째 샷은 그린 뒤 벙커에 빠졌다. 여섯 번째 샷으로 볼을 그린 위에 올린 스피스가 한 번의 퍼트로 홀아웃했을 때는 이미 ‘쿼드러플 보기’가 돼 있었다. 순식간에 선두는 대니 윌렛(잉글랜드)으로 뒤바뀌었다.

스피스는 13번홀과 15번홀에서 거푸 버디를 잡아내며 반격을 시도했지만 17번홀 보기를 범하며 주저앉고 말았다. 최연소 마스터스 2연패 꿈도 물거품이 됐다. 경기가 끝난 후 스피스는 “힘들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숙였다.

○윌렛 “고맙다, 아들아”

클럽하우스에서 스피스의 침몰을 지켜보던 윌렛은 캐디와 끌어안고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이라는 대박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 5개를 잡아내 최종합계 5언더파 283타로 우승컵을 안았다. 우승 상금은 180만달러(약 20억7600만원). 윌렛은 역대 두 번째로 그린 재킷을 입은 잉글랜드 선수가 됐다. 1996년 마스터스 챔프 닉 팔도 이후 20년 만이다.

뜻밖의 대박을 터뜨린 윌렛은 원래 대회 출전을 포기하려 했다. 첫 아이 출산 예정일과 대회 기간이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아들을 열흘 일찍 출산하는 덕분에 출전 선수 중 맨 마지막인 89번째로 신청서를 냈다.

그는 통산 4승의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기대주다. 하지만 메이저 챔프가 즐비한 PGA 무대에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도박사들도 그의 우승 확률을 낮게 봤다. 마지막날 윌렛에 걸린 배당률은 500 대 1. 1달러를 걸면 500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필 미켈슨(미국)만이 그의 우승을 점쳤다. 그는 대회에 앞서 “올해 마스터스는 영국 선수의 강세가 예상된다. 특히 윌렛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커리어 그랜드슬램’(생애 통산 4대 메이저 우승)을 노리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1오버파 공동 10위로 대회를 마쳤다.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호주)와 같은 자리다.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25·한국명 이진명)는 4오버파 공동 17위에 이름을 올려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