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퍼터 잡은 老兵 > 랑거는 올해 그립 끝을 몸에 대는 앵커링이 금지된 이후에도 롱퍼터를 계속 쓰고 있다. 그립 끝을 몸에서 살짝 떼 규정 위반을 피해갔다.
< 롱퍼터 잡은 老兵 > 랑거는 올해 그립 끝을 몸에 대는 앵커링이 금지된 이후에도 롱퍼터를 계속 쓰고 있다. 그립 끝을 몸에서 살짝 떼 규정 위반을 피해갔다.
골퍼 대다수의 비거리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 20~30대에 ‘짱짱’하던 드라이버 거리가 40대가 넘으면 1~2m씩 슬금슬금 내리막길을 걷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시간과 여유가 가장 많은 50대에 더 극적으로 거리가 줄어든다. 스윙분석기 전문업체 플라잉스코프에 따르면 평균 196m인 20대 골퍼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40대에 191m, 50대에 181m로 쪼그라든다. 경륜이 늘었으니 퍼팅 실력만큼은 줄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퍼팅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그린 굴곡을 읽는 시력과 근육의 유연성이 나빠지는 게 결정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명인열전’ 마스터스 대회를 ‘우승이 가장 쉬운 메이저 대회’로 부르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숨어 있다. 50대 이상 출전자를 아예 우승경쟁에서 빼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대회만큼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50대 노장 골퍼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마스터스 2승(1985년, 1993년)을 올린 ‘시니어투어 최강자’ 베른하르트 랑거(59·독일)가 대표적이다. 젊은 후보들이 두 자릿수 오버파로 나가떨어지는 예선에서 1라운드 이븐파, 2라운드 1오버파로 버텼다. 10일(현지시간) 열린 3라운드에서는 2언더파를 쳐 공동 3위까지 치고 나왔다. 3라운드만 놓고 보면 3언더파를 친 스마일리 카우프만(미국)에 이어 2위다. 이날 언더파를 친 선수는 57명 중 5명에 불과했다.

이뿐만 아니라 1987년 마스터스 챔프인 래리 마이즈(58)와 투어 통산 21승의 데이비드 러브3세(52) 등 50대 ‘베테랑’ 두 명도 까다로운 오거스타 코스를 뚫고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50세가 넘은 선수 3명이 본선에 진출한 것은 2007년 이후 처음이다.

조던 스피스
조던 스피스
전문가들은 노장의 선전을 마스터스 특유의 까다로운 환경에서 주로 찾는다. 언제 어느 방향으로 불지 모르는 바람이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오거스타내셔널GC의 바람은 악명이 높다. 풍향계가 ‘동풍’을 표시하고 있음에도 그린에선 서풍이 불거나 소용돌이가 생기기도 하는 곳이 오거스타다.

이날 15번홀(파5)에서 2온을 한 빌리 호셜(미국)은 그린 위에 있던 공이 강풍에 밀려 해저드로 굴러들어가는 바람에 보기를 적어내기도 했다.

올해 대회에 처음 나온 케빈 키스너(미국)는 “어차피 바람이 어떻게 불지 모르는데 고민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 운에 맡기고 공을 쳤다”고 말했다. 골프위크는 “비거리가 짧은 노장이 기회를 잡을 때는 대개 오거스타 코스가 춥거나 강풍이 부는 등 악천후로 변수가 많을 때”라며 “장타나 정교한 아이언 샷 등 젊은 선수들이 갖춘 장점은 무력화된 반면 노장의 오랜 경륜은 악조건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장이 우승할 확률은 실제로 높지 않다. 50세를 넘은 선수가 마스터스는 물론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 대회를 제패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마스터스 최고령 우승자는 잭 니클라우스로, 1998년 46세에 챔프가 됐다. 다른 메이저 대회 최고령 우승 기록은 1968년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줄리어스 보로스(당시 48세)가 갖고 있다.

지난해 4라운드 내내 선두를 유지해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한 디펜딩 챔프 조던 스피스(미국)는 3라운드에서도 3언더파 단독 선두를 유지해 마스터스 최다인 7라운드 연속 선두 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1960년과 1961년 2연패를 한 아널드 파머(미국)의 6라운드 연속 선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