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선·후배 소개로 별다른 죄의식 없이 시작"

불법 스포츠도박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스포츠 종목이 있기는 할까.

프로농구 간판스타 김선형(28·서울SK)이 연루됐던 전·현직 농구·유도선수들의 스포츠도박 사건이 불거진 지 불과 반년 만에 이번엔 동계스포츠계에서 사건이 터졌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원정 도박 파문도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다.

특히 이번엔 고교생 선수까지 포함돼 충격을 더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체육계 특성상 선후배끼리 매우 가깝게 지내면서, 별다른 죄의식 없이 도박을 접한 뒤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고교생 포함 쇼트트랙 선수 20여 명 수사선상
7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김모(18)군 등 쇼트트랙 국가대표급 선수 3명과 실업 선수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김군 등 선수 3명은 모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 3일 열린 국가대표 2차 선발전을 순위권으로 통과했던 터라, 빙상계는 혼돈에 빠졌다.

게다가 이번에 입건된 선수 중에는 김 군처럼 고교생까지 포함돼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지난해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서 1인당 200만∼300만원씩 베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프로농구와 프로야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베팅했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경찰은 이들 외에도 쇼트트랙 선수 20여명의 도박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 김선형 기소유예…수천만원 베팅해도 엄벌은 난망
이들을 수사 중인 경기북부경찰청은 지난해 전·현직 농구·유도선수들의 불법 스포츠도박 혐의도 수사했다.

당시 검찰에 넘겨진 전·현직 선수만 28명으로, 국내 농구계 등은 사실상 쑥대밭이 됐다.

그러나 김선형 선수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것을 비롯해 이들 가운데 13명이 기소유예 또는 불기소 처분되는 등 의정부지검에서 처벌 규모는 대폭 줄었다.

전 프로농구 선수 박모(30)씨와 전 유도선수 황모(29)씨 등 7명은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상습적으로 베팅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되고, 나머지 8명은 약식기소됐다.

현재 이들에 대한 1심 재판이 의정부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지난달 22일 의정부지법 형사4단독 하석찬 판사의 심리로 첫 공판이 열렸고, 도박 혐의를 인정한 전·현직 선수 5명에게 검찰은 징역 8월∼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

이미 모두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데다가 구형부터 집행유예 수준으로 나오자 엄벌은 어차피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프로농구 경기 승부조작 혐의도 받는 박씨와 황씨는 도박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승부조작은 부인해 법정 다툼을 예고했다.

◇ 합숙하면서·상무부대서 도박 접해
스포츠계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쉽게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잦은 합숙 훈련이나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만나 가깝게 지내면서 다른 사람의 소개를 받을 경우 별다른 죄의식 없이 쉽게 도박에 손을 대게 된다는 게 주된 이유로 꼽힌다.

도박사건에 연루된 선수들 대부분이 같은 학교 선·후배 출신이거나 같은 시기 상무부대 출신이란 점이 이를 증명한다.

김선형 선수도 "대학 시절 학교 컴퓨터에서 처음 스포츠도박을 접하게 됐다"면서 "큰돈은 아니지만 돈을 따게 돼 그 돈으로 통닭을 사 먹었고, 재미 때문에 큰 죄의식 없이 스포츠 도박을 계속하게 됐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황씨와 박씨도 농구와 유도로 종목은 서로 다르지만, 함께 군 복무하며 친분을 쌓았다.

당시 군부대에서 반입이 금지된 스마트폰을 몰래 들여와 선수들이 베팅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이들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담배나 술을 하지 않아 운동 스트레스를 도박으로 풀려고 한 것으로, 운동 중단 후 생계유지도 힘들어 불안한 마음에 도박에 빠졌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소위 '잘나가는' 선수가 아닌 경우 가볍게 시작한 도박으로 한번 돈을 벌면 중독 수준으로 빠지는 선수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유도선수인 배모(27)씨는 "도박해서 돈을 못 벌면 바보라는 분위기까지 있다더라"면서 "특히 주목받지 못한 선수는 돈을 벌기가 어렵다 보니 한번 손댄 도박을 쉽게 끊지 못한다"고 귀띔했다.

(의정부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suk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