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지(22·하이트진로)와 장하나(24·비씨카드)는 편안해 보였다. 버디를 잡으면 캐디와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주먹을 마주치며 즐거워했다. 아이언 샷을 준비할 땐 거리를 상의하는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숙제’를 끝낸 홀가분함 덕분일까.

‘공항 에스컬레이터 사건’으로 관계가 불편했던 전인지와 장하나가 맹타를 휘두르며 ‘호수의 여왕’ 경쟁에 본격 가세했다. 1일 개막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인스피레이션 1라운드에서다.
'호수의 여왕' 일발장전
◆장-전, 나란히 3언더파 ‘팽팽’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 미션힐스CC(파72·6769야드) 10번홀에서 앞뒤 조로 티오프한 두 사람은 나란히 3언더파를 쳤다. 전인지가 버디 4개, 보기 1개를 기록했고 장하나는 버디 5개, 보기 2개를 적어냈다. 그간의 감정 싸움을 접고 본격적인 순위 경쟁을 시작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다.

전인지는 허리 부상 전력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드라이버가 좋았다. 페어웨이 적중률이 71.4%, 드라이버 평균거리가 254야드였다. 240야드대이던 지난해와 확연히 달라진 비거리다. 전인지는 “동계훈련 때 체중을 불리고 하체 훈련을 강화해 비거리를 10야드 이상 늘렸다”고 말했다. 퍼팅도 26개밖에 하지 않아 실전경험 공백은 감지되지 않았다. 프로 투어에선 라운드당 30개 미만의 퍼팅 수를 ‘감각 회복’의 기준으로 여긴다.

장하나는 아이언 샷이 좋았다. 전인지가 56.6%의 그린 적중률을 보인 데 비해 장하나는 83.3%를 기록했다. 올 시즌 가장 먼저 2승 고지에 오른 장하나의 시즌 평균 그린 적중률은 82.7%다. 퍼팅은 30개로 다소 불안했다.

두 선수가 만난 것은 한 달여 만이다. HSBC위민스챔피언스에 출전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도착한 전인지가 공항 에스컬레이터에서 장하나의 아버지가 놓친 짐가방에 부딪혀 허리를 다친 탓에 한 달간 대회에 출전할 수 없어서였다.

관계가 껄끄러워진 두 선수가 필드에서 다시 만나자 현지 언론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화해 여부가 초점이었다. 오렌지색 밝은 티셔츠를 입고 나온 전인지는 현지 매체의 질문에 “다 지난 일이다. 경기하는 데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흰색 티셔츠를 입은 장하나 역시 “아무 문제 없다.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둘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인사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1인자 경쟁’ 박인비-리디아 고 ‘박빙’

지난주 KIA클래식에서 1, 2위에 오르며 화끈한 ‘1인자 경쟁’을 예고한 리디아 고(19)와 박인비(28·KB금융그룹)도 나란히 2언더파(공동 14위)를 쳐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이날 선두는 일본의 미야자토 아이와 스페인의 아사하라 무노스였다. LPGA투어에 모처럼 얼굴을 드러낸 전 세계랭킹 1위 미야자토는 완벽한 퍼팅 감각을 내세우며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뽑아내 5언더파를 쳤다. 동타를 적어낸 무노스는 단독 선두로 경기를 끝낼 수 있었지만 샷 실수로 그린 공략이 엉키면서 막판 보기를 범해 공동선두를 허용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의 새 아이콘으로 떠오른 렉시 톰슨은 이날 헤드가 큰 검은색 대형 퍼터를 새로 들고 나와 전인지와 같은 3언더파를 쳐 관심을 모았다. 톰슨의 퍼터는 헤드 힐(heel)과 토(toe)에 무게조절 추를 달아 방향성을 조절할 수 있는 ‘큐어 퍼터’다. 한때 눈을 감고 퍼팅을 시도하기도 한 그는 이날 그립도 왼손을 오른손보다 내려 잡는 역그립에서 일반적인 방식인 정상 그립으로 바꿔 잡았다. 여전히 퍼팅에 고민이 많다는 얘기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