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미국)는 캘리포니아주의 리비에라CC를 끔찍이 싫어한다. 프로로 데뷔한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아홉 번 연속 출전했지만 그는 한 번도 이곳에서 ‘챔프’로 포효하지 못했다. 우즈가 세 번 이상 출전해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유일한 골프장이 리비에라CC다. ‘서부의 오거스타’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빠르고 딱딱한 그린이 ‘골프 황제’를 매번 탄식하게 했다. 그는 2006년 “감기몸살이 심하다”며 대회 도중 리비에라를 떠난 뒤 10년간 발길을 끊었다.

‘우즈의 악몽’이 이번엔 조던 스피스(미국)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세계랭킹 1위인 스피스가 19일 이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노던트러스트오픈 1라운드에서 8오버파 79타를 쳤다. 보기 8개, 더블 보기 1개를 적어냈다. 그나마 2개의 버디가 없었으면 두 자릿수 오버파를 기록할 뻔했다.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1라운드 성적이다.

< “어디로 가는 거야” > 19일 PGA투어 노던트러스트오픈에 출전한 조던 스피스의 공은 평소와 달리 왼쪽으로 자주 감겼다.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 리비에라CC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스피스가 아이언 티샷한 공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날아가자 클럽을 놓고 있다. AFP연합뉴스
< “어디로 가는 거야” > 19일 PGA투어 노던트러스트오픈에 출전한 조던 스피스의 공은 평소와 달리 왼쪽으로 자주 감겼다.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 리비에라CC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스피스가 아이언 티샷한 공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날아가자 클럽을 놓고 있다. AFP연합뉴스
◆“언젠가 이런 날 올 줄 알았어”

스피스는 2013년 메모리얼토너먼트 3라운드에서 82타를 기록한 적도 있다. 최근에 가장 나빴던 성적은 2014년 9월 투어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기록한 80타다. 하지만 전체 출전 선수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에 이름을 올린 적은 없다. 지난해 인천 송도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 미국 대표로 함께 출전했던 스티븐 보디치가 막판에 9오버파를 쳐 겨우 꼴찌를 면했다. 스피스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까 아프다”며 “잊고 싶은 날”이라고 말했다.

드라이버샷과 아이언샷이 왼쪽으로 자주 감겼다. 페어웨이 안착률이 64%, 그린 적중률이 50%에 그쳤다. ‘세계 최강’ 퍼팅마저 고장났다. 평소 같았으면 놓치지 않았을 1~3m짜리 짧은 퍼팅이 홀컵 근처에서 맴돌았다. 18번홀(파4)에선 약 3m 거리에서 3퍼팅을 하는 바람에 홀컵을 앞뒤로 오락가락해 체면을 구겼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리비에라CC를 두고 ‘좋아하는 골프코스 톱5 중 하나’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2012년 이곳에서 열린 미국대학스포츠(NCAA) 골프대회에선 모교인 텍사스대 골프팀의 일원으로 참가해 우승한 짜릿한 기억도 있다. 대회 전 인터뷰에서 그는 “서른 번도 더 와본 곳이라 페어웨이 굴곡을 훤히 안다. 그린이 까다롭지만 공략법을 다 짜놔서 재밌는 경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성적 부진의 원인을 그는 ‘달라진 그린’에 돌렸다. 딱딱했던 그린이 전날 내린 비로 부드러워지면서 퍼팅 스피드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스피스는 “한 라운드에서 10언더파를 친 적도 있다. 남은 라운드에서 진짜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스피스 '컴퓨터 퍼팅' 고장…8오버파 굴욕
◆비예가스 펄펄…매킬로이도 선전

골프 팬들이 기대했던 세계랭킹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의 맞대결은 무산될 공산이 커졌다. 이날 매킬로이는 버디 5개와 보기 1개를 묶어 4언더파(공동 5위)를 쳤다. 예선 통과를 걱정하고 있는 스피스와 12타 차이다.

촉촉해진 그린과 찰떡궁합을 과시한 이는 ‘스파이더맨’ 카밀로 비예가스(콜롬비아·사진)다. 그린에 몸을 바짝 붙여 경사를 읽는 ‘거미 자세’로 유명해진 그는 17번홀까지 버디만 9개를 잡아냈다. 18번홀 보기 하나가 옥에 티였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선보였다. 8언더파로 2위 그룹과 3타 차 단독 선두다.

그는 “샷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 남아 있던 잡념을 없앤 이후 스윙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코리안 탱크’ 최경주(46·SK텔레콤)는 버디 5개와 보기 3개로 2언더파를 쳐 무난하게 출발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