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는 “우승할 때마다 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태희가 올해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최만수 기자
이태희는 “우승할 때마다 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태희가 올해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최만수 기자
프로 데뷔 후 첫 승까지 10년이 걸렸다. 이태희(32·OK저축은행)는 지난해 6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넵스헤리티지에서 마침내 고대하던 우승컵을 안았다.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까지 받은 그는 KPGA투어의 스타로 거듭났다.

최근 경기 성남시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만난 이태희는 “비록 우승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시작일 뿐, 내 골프 인생에서 첫 관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며 “10승을 채우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말했다.

잘생긴 얼굴과 탄탄한 몸매, 따뜻한 매너까지 갖춘 이태희는 2006년 데뷔 초부터 KPGA투어를 이끌어갈 차세대 스타로 꼽혔다. 하지만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넘어지며 동료들이 앞서나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봐야 했다. 준우승만 세 번 했다.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어깨 부상으로 선수 생명을 마감할 위기도 찾아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선동열 전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감독과 김세진 프로배구 OK저축은행 감독이 제겐 은인(恩人)입니다. 선 감독님은 운동선수의 자세에 대해 조언하셨어요. ‘자기와의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그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라’고요. 김 감독님은 늘 자신감을 강조하셨어요. ‘우승이 없을 뿐이지 너만큼 한 사람은 위에 몇 명 없다. 기죽지 말고 항상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입니다.”

넵스헤리티지 대회 마지막날에도 김 감독은 갤러리로 찾아와 자신감을 북돋워줬다. 흔들리던 이태희는 그의 응원에 힘을 냈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우승이 확정되자 그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이후 윗옷을 벗고 뛰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그전엔 원망도 많이 했죠. 스스로 ‘왜’라는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괴로워서 심리치료도 받았어요. 하지만 이것도 우승까지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꾸준히 상금랭킹 상위권에 있었으니 우승은 언젠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간절함은 남아 있었지만 불안함과 초조함이 사라졌죠.”

늦게 꽃을 피웠지만 이태희의 골프는 이제 시작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지 6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몸에 안 좋다는 건 일절 손대지 않아요. 취미로도 등산, 자전거 등 운동을 즐깁니다. 근력을 유지하면서 유연성과 밸런스를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죠. 몸 관리를 잘해왔기 때문에 시니어가 돼서도 충분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첫 우승 뒤엔 자신감이 많이 생겼습니다. 매 시합이 기대되고 기다려집니다. 준비만 잘하면 언제든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덧 이태희는 KPGA투어에서 고참급 선수가 됐다. 여자골프에 밀리고 있는 남자골프의 현실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놨다. 이태희는 “윗옷을 벗고 뛴 것도 골프팬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며 “다음에 우승하면 그 자리에서 갤러리 세 분을 뽑아 저녁식사와 함께 동반 라운드 기회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승할 때마다 새로운 이벤트를 내걸 계획이다. 이태희는 “남자선수들은 무뚝뚝하다는 인상이 많다”며 “선수 스스로가 팬과 스폰서에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잘생긴 얼굴 덕분에 여성팬이 많을 것 같다는 얘기에 그는 “김태훈 프로, 홍순상 프로랑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재미있는 경기, 멋진 플레이, 유쾌함을 보여줄 자신이 있다”며 “올 시즌을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