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멕시코 베라크루즈주 시내 베라크루즈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강습 세미나'에 참여한 인근 지역 태권도 수련생들이 봉사단원과 현지 지도자들의 구령에 맞춰 발차기 동작을 따라하고 있다. /사진=(베라크루즈) 유정우 기자
지난 30일 멕시코 베라크루즈주 시내 베라크루즈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강습 세미나'에 참여한 인근 지역 태권도 수련생들이 봉사단원과 현지 지도자들의 구령에 맞춰 발차기 동작을 따라하고 있다. /사진=(베라크루즈) 유정우 기자
[유정우 기자] "재패니즈(일본인) 태권도요?"
지난 30일 멕시코 베라크루즈주(州) 시내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일본의 가라데를 아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답변이다. 멕시코에선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무예 가라데의 흔적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저 '일본식 태권도'로 인식될 뿐이다.

1970년대 '코리안 가라데'로 불리던 태권도가 멕시코의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 하면서 생긴 자연스런 현상이다. 전국 4000여곳의 태권도장에선 한글 구령에 K팝이 흘러나오는 진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들이 "종주국 부럽지 않은 시장"이란 평가를 내놓는 이유다.

◇멕시코 태권도의 역사… '그랑 마에스트로'

멕시코인들이 일본의 가라데를 '태권도를 모방한 무술'로 이해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대원 사범(73)의 역할이 컸다. 1969년 미국 유학시절 멕시코로 건너온 문 사범은 가라데가 대세였던 멕시코 현지에 태권도를 전파, '그랑 마에스트로(대사부)'란 애칭으로 통한다.

척 노리스, 브루스 리 등이 함께 뛴 전미 블랙밸트 디비전에서 '3년 연속(1965-1967)' 챔피온 밸트를 거머쥔 뒤 멕시코로 넘어왔다. 당시 그는 척박한 멕시코에 태권도를 전파하며 가라데 도장의 일장기를 하나씩 태극기로 바꿔 나갔다. 지난 45년간 그의 지도를 받은 태권도 유단자는 5만명 이상. 그를 '멕시코 태권도의 창시자'로 부르는 이유다.

태권도 인기의 비결은 멕시코인들의 생활 속까지 깊이 파고 든 독특한 수련법이다. 현재 멕시코내 태권도장 수는 약 4000여개, 수련 인구는 약 200만명 수준이다. 이 가운데 약 25%에 해당하는 1000여개 도장이 무도(武道) 정신과 '지덕체(智德體)'를 강조하는 문 사범의 교육 방식을 따르고 있다.
28일 멕시코시티 시내 중심에 위치한 한 태권도장에서 현지 수련생들이 멕시코인 사범의 구령에 맞춰 강습 받고 있다. 우측 상단에 걸린 대형 태극기가 눈길을 끈다. / 사진= 한경DB
28일 멕시코시티 시내 중심에 위치한 한 태권도장에서 현지 수련생들이 멕시코인 사범의 구령에 맞춰 강습 받고 있다. 우측 상단에 걸린 대형 태극기가 눈길을 끈다. / 사진= 한경DB
높은 경기력도 국민적 열기를 지폈다는 평가다. 멕시코는 1975년 서울 동대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종합 3위를 기록,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지난 2008년 북경올림픽에선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 2개를 획득, 전국적인 태권도 열풍을 일으켰다.각종 CF의 주인공을 태권도 선수들이 도 맡았을 정도다.

◇세계 최초 태권도 프로 리그 창설… 관람과 참여 문화 조화

멕시코인들이 태권도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련으로 자아성찰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태권도를 통해 예절과 '홍익인간의 정신' 등을 습득, 문제아로 인식되던 학생들이 모범적인 사회인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쌓인 신뢰가 바탕이 됐다.

현지의 높은 인기만큼이나 세계 태권도계 내에서의 위상도 높다. 2010년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가 열린 이후 2013년 푸에블라에선 세계선수권대회가, 이듬해엔 그랑프리 파이널을 케레타로에서 연이어 개최했다. 태권도 경기의 유료 티켓은 종주국인 국내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멕시코에선 상황이 다르다. 국제 대회 마다 평균 5000석 이상은 유료 입장객으로 채워진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겨루기 뿐 만이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품새 종목의 확산도 활발하다. 지난 2008년부터 품새 종목을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 채택, 운영 중이다. 야세프 사모라(Yaseff Zamora) 멕시코 베라크루즈주 태권도협회장은 "품새는 손자와 할아버지 등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따로 없을 만큼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부터 'TK(Taek-Kwon)5'란 이름으로 멕시코에서 열리고 있는 태권도 프로 리그의 경기 모습. 전 세계 최초로 시행중인 프로 태권도 리그는 화려한 유니폼과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가미된 게 특징이다. / 사진= 한경DB
지난 2011년부터 'TK(Taek-Kwon)5'란 이름으로 멕시코에서 열리고 있는 태권도 프로 리그의 경기 모습. 전 세계 최초로 시행중인 프로 태권도 리그는 화려한 유니폼과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가미된 게 특징이다. / 사진= 한경DB
프로 리그도 인기다. 2011년부터 'TK(Taek-Kwon)5'란 이름으로 개최되는 태권도 프로 리그는 전 세계 최초로 시도해 올해로 30회째를 맞는다. 6명이 한팀을 이뤄 전자호구제가 아닌 심판 판정제로 승부를 가린다. 화려한 유니폼과 라운드 걸 등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가미된 게 특징이다. 뜨거운 국민적 열기는 삼성과 CJ 등 현지 진출 한국기업의 후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장마다 울려퍼지는 '지드레곤' 음색… K팝과 결합한 융합 시너지 기대

K팝 열기도 태권도 문화 확산에 한 몫 하고 있다. 국제교류재단 조사에 따르면 멕시코내 K팝을 즐기는 인구는 약 15만명으로 추산된다. 5년전(2011년)보다 5배 이상 증가한 결과다. 이들 중 90% 이상이 태권도의 주 수련층인 10∼20대란 점에서 스포츠 콘텐츠로서 태권도의 문화적 가치 확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 인력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2010년부터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총재 이중근)을 통해 매년 3~4명씩 파견된 봉사단원중 현지에 취업된 인원은 다섯 명. 그 가운데 한 명인 임대현(32)씨는 올해로 3년째 베라크루즈주 태권도 대표팀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올해 파견됐던 이혜림(24)양도 봉사활동 중 '러브 콜'을 받아 베라크루즈체육회로 취업을 논의 중이다.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의 한국어 강습 현장. / 사진= 한경DB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의 한국어 강습 현장. / 사진= 한경DB
태권도와 K팝에 대한 관심은 한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문화원 한국어 강좌는 650명 모집을 모집하는데 접수마감까지 한 달여를 남겨둔 상황에서 이미 1260여명이 신청했다. 660여명이 신청한 지난 해보다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장치영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장은 "멕시코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은 태권도의 인기는 한국과 한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K팝 열풍에 힘입어 한글을 배우려는 젊은층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상호 시너지를 모을 수 있는 다양한 융합 콘텐츠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베라크루즈(멕시코)= 문화스포츠부 차장 see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