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힘들어도 괜찮아, 힘들어도 괜찮아, 힘든 건 나의 추억이니까~ 때로는 힘들어 쓰러지면은, 오뚝이처럼 일어날 거야, 시련아 덤벼라, 시련아 덤벼라, 힘들수록 내 미래는 빛이 날 거야, 지금은 세찬 눈보라 힘들겠지만, 이 순간 지나면 봄날은 온다, 힘들어도 할 거야, 시련아 덤벼라, 힘든 건 나의 추억이니까.”

경기 고양시 설문동, ‘힘들어도 괜찮다’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곳은 논두렁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는 시골의 공장이었다. 차 안의 온도계가 알려주는 바깥 온도는 섭씨 32도, 공장 바닥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를 밟고 제화업체 바이네르 본사로 들어섰다. 약속시간은 오후 2시였지만 조금 일찍 도착한 터에 공장 복도를 어슬렁거리다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최근 KPGA 코리안투어 2개 대회를 연속 우승한 김우현 프로(23)였다. “아버지가 1시30분까지 오라고 했어요”라는 김 프로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서자 노래의 주인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 프로의 아버지이자 바이네르를 운영하고 있는 김원길 대표(53)였다. ‘힘들어도 괜찮아’는 김 대표가 직접 가사를 쓴 자작곡이다.

골프 챔피언 키운 구두 챔피언

“축하드립니다~.” 먼저 아들의 2개 대회 연속 우승 축하 인사를 건넸더니 김 대표의 입이 귀에 걸렸다. (공장 입구에는 ‘김우현 프로 우승’이라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 KPGA 투어 프로가 된 지 4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프로골퍼를 아들로 둔 아버지에게는 긴 세월이었다. “나름 고생하면서 골프를 가르쳤는데 우승하지 못해 좀 답답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그것도 2개 대회 연속으로 우승하니 좋지요.”

고생 혹은 시련이라는 단어만큼 김 대표를 대변하는 단어도 없다. 김 대표는 충남 당진 사람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산에 있는 작은아버지에게서 구두 기술을 배웠다. 열여덟 살 때 ‘제대로 구두장이가 돼 보자’는 생각으로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상경했다. “월급은 필요 없고 기술만 가르쳐 달라”며 영등포 일대 양화점이란 양화점은 다 찾아갔다. 그를 받아준 곳은 문래동에 있는 한 구둣방. 열심히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둣방 일감이 줄면서 쫓겨났다. 그해 가을 우연한 기회에 작은 구두회사에 취직했다. 당시 유명 브랜드인 ‘케리부룩’에 납품하는 업체였는데, 그의 남다른 손기술이 입소문을 타면서 원청업체에 스카우트됐다.

19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나가 동메달을 땄지만 기뻐하기는커녕 부족한 노력을 탓하고, 연탄가스를 마신 날에도 재봉틀 앞에 앉은 그의 성실함과 승부욕에 세상은 조금씩 길을 내주기 시작했다. 케리부룩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관리·영업직을 두루 거쳤다. 판매 부진으로 백화점에서 브랜드가 철수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김 대표는 자신의 영업 능력을 보여주는 기회로 활용했다.

1994년 사장의 꿈을 이루고자 사표를 내고 회사를 차렸다. 회사 이름은 주식회사 ‘원길’(이후 안토니로 바꿈).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업이란 게 녹록지 않았다. 부도 위기에 차를 몰고 한강으로 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 “죽으려고 생각하니 그동안 고생한 기억들과 함께 망가진 내 자신이 보이더군요. 그토록 자신하던 품질 생각은 않고 돈 생각만 하고 있더라고요.”

그로부터 절치부심 10년, ‘족(足)장이’ 인생 34년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자신이 납품하던 이탈리아 구두 브랜드 ‘바이네르’를 인수한 것이다. 지난해 바이네르의 매출은 약 500억원이었다. 백화점 판매 기준 바이네르의 업계 랭킹은 3위, 김 대표는 10년 안에 ‘구두업계 챔피언’을 자신한다.

구두 하나만 보고 살아온 세월이 35년, 골프의 ‘골’자도 몰랐을 인생이었을 텐데 김 대표는 어떻게 아들을 골프선수로 키웠을까.

아들은 나의 꿈, 아버지는 나의 힘

김 대표가 골프클럽을 처음 잡은 것은 케리부룩 지사장 때였다. 특유의 승부욕으로 골프 실력이 빨리 늘었다. 한 6~7년 지났을까. 아마추어 고수인 박삼규 씨와 라운딩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결과는 연전연패였다.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나도 골프 좀 친다고 생각했는데, 자존심도 막 상하고. 그런데 그 양반 아들이 우리 우현이 또래였는데 골프를 한다는 거예요. 그날로 우현이를 데리고 골프장에 갔죠. 만 네 살 때였죠, 아마.”

다소 우스꽝스럽게 시작했지만, 아들의 운동신경에 깜짝 놀랐다. ‘싹수’가 보였던 것이다. 김 대표는 곧바로 어린이용 클럽을 제작하고, 골프화까지 만들었다.

“재밌더라고요. 그냥 재밌었어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웠어요. 코치는 아버지였고, 매일 연습장에 가서 열 박스씩 쳤어요. 샷을 한 번 잘못하면 아버지가 막 걷어차기도 했어요. 그땐 좀 서러웠지만, 하여간 골프가 재밌었던 건 맞아요.”(김우현 프로)

아버지는 오기로, 아들은 재미로 시작한 골프였지만, 이들 부자에게 골프가 김 프로의 인생임을 깨닫게 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죠.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주니어월드챔피언십에 출전해 우승한 거예요. 그때 3라운드를 이븐파로 마쳤는데, 홀인원도 했어요.”

이후 친구 노승렬 프로(PGA 진출)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청소년 골프선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2007년 고교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고, 그해 전국체전 금메달도 땄다. 2010년에는 국내에서 60명에게만 허락되는 KPGA 투어 프로가 됐다. 그리고 4년, 마침내 낭보를 전했다. 그것도 2개 대회 연속 우승이었다. 김 프로는 지난달 1일 해피니스 송학건설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이어 15일 보성CC클래식에서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골프학개론

골프 챔피언을 키운 구두 챔피언의 골프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아버지 골프 잘 치세요. 가끔 라운딩을 같이 하는데, 스코어 차이가 많이 안나요. 보통은 제가 60대 후반, 아버지는 70대 후반을 쳐요. 1타당 1만원 내기를 하면서 아버지한테 핸디캡 8개를 주는데, 돈은 제가 조금 따요. 버디값이 있잖아요, 하하.” 김 대표의 골프 실력은 핸디캡 3. 최고 기록은 3언더파다.

프로골퍼 못지않은 실력을 가진 김 대표는 최근 아들을 위해 골프대회까지 만들었다. 다음달 21일부터 강원 고성에서 열리는 ‘바이네르·파인리즈오픈’이다. 김 대표는 이 대회에 상금 5억원을 내놓았다.

매출 500억원의 강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지만, 5억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김 대표에게 무리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골프나 사업이나 마찬가지예요. 뭘 더 가지려고 한다고 해서, 또 계산한 대로만 움직여지지 않죠. 어렵기 때문에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비슷한 점이죠. 골프대회를 만든 것도 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돈도 없는 놈이 까불다가 넘어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사업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될 겁니다.”

아들의 생각은 어떨까. “사실 좀 걱정입니다. 일단 대회 규모가 크니까, 아버지한테는 당연히 부담이 될 것이고, 제가 우승도 하고 성적이 좀 나다 보니까 한 대회라도 더 뛰게 하려고 그러시는 것 같은데, 음… 저도 저지만, 아버지가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김 대표가 한 마디했다. “야 인마, 다음주 메이저대회(야마하·한경 KPGA선수권대회) 나갈 건데, 우드하고 롱아이언 연습이나 더 해.”

훈훈한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마칠 무렵, 녹음기를 끄려는 기자에게 김 프로가 할 말이 남았다고 했다.

“이런 얘기 좀 써주시면 안돼요? KPGA대회 말인데요. 여자대회에 비해 대회 수가 너무 적어요. 그렇다 보니 잘하는 남자선수들이 국내에 머물러 있지를 않잖아요. 악순환이에요. 기업들이 나서서 대회가 좀 많아지면 스타 플레이어도 많아지고, 경기도 재미있을 텐데요. PGA에 진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도 좋지만, 한국 남자골프가 좀 더 활기를 띠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해외 진출에 앞서 국내 무대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23세의 젊은 프로골퍼. 그 옛날 모두가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다며 조그만 구두회사를 창업했던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김원길의 인생철학
백마부대원의 멘토…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아름다운 흔적 남겨야”

김 대표는 백마부대(9사단) 명예사단장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 오전에도 군부대를 다녀왔다. 1사단과 9사단 신병교육대에는 기수마다 김 대표의 특강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잡혀 있다. 특강 내용은 ‘중학교밖에 못 나온 나도 해냈는데, 너희가 못할 게 뭐냐’는 내용의 인생 강의로, 그는 장병들에게 신교대가 ‘신병교육대학교’의 줄인 말이라고 말한다. 김 대표는 해마다 8명씩 모범사병을 뽑아 호주,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보내주고 있다.

그는 봄·가을엔 골프, 여름엔 수상스키, 겨울엔 스노보드를 즐긴다.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직원들과 함께, 또는 자신이 키우는 멘티들과 함께 어울린다. 공장 뒤쪽에 주차돼 있는 1억원이 넘는 벤츠 스포츠카(SLK 55 AMG)와 제주에서 공수해온 말 두 마리는 직원 여가용이다. 직원이 셋째 자녀를 낳으면 현금 1000만원을 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제2의 김원길’을 꿈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1회 바이네르 구두 디자인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대상 상금이 2000만원, 총 상금은 3800만원이다.

“나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하면 돼지 같은 삶이죠. 사업 잘해서 번 돈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쓰면서 사는 게 행복 아닌가요. 구두 공모전도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번 돈 제2의 김원길을 키우는 데 쓰는 것이죠. 저의 행복이자 특권이죠.”

김 대표가 아들에게 바라는 것도 자신의 삶의 궤적과 다르지 않다. “골프를 더 열심히 해서 우현이가 골프역사를 새로 써줬으면 좋겠어요. 돈도 많이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도 돕고, 존경받는 골퍼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삶이죠.”(‘아름다운 흔적’은 김 대표가 최근 작사 중인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김우현의 골프철학
“우승 노리면 그만큼 더 멀어진다”

김우현 프로에게 오는 10일 개막하는 메이저대회 ‘야마하·한경 KPGA선수권대회’에 임하는 포부를 물었다. 최근 2개 대회 연속 우승으로 올 시즌 유력한 상금왕 후보치고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저는 (항상) 계획이 없어요. 시합에 나서면 최선을 다할 뿐,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아요. 첫 승 했을 때 친한 형이 해준 얘기가 있는데요. 챔피언 조에 들어가면 우승은 내 의지와 상관없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아무리 잘 쳐도 다른 선수가 조금만 더 잘하면 우승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아무리 못 쳐도 남이 나보다 한 타라도 못 치면 제가 우승하는 거잖아요. 우승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만큼 우승은 멀어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딴생각을 하면서 시합에 임하면 결과가 더 좋더라고요.”

2007년 김경태 프로 이후 7년 만이었다. KPGA 코리안투어 2개 대회 연속 우승 기록은 그렇게 나온 것이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