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복병 에콰도르가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첫 경기를 죽은 동료의 영전에 바치는 '추모의 골'로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꿈꾸던 승리를 놓쳐 슬픔 속에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전 세계 모든 팀과 마찬가지로 월드컵 본선행을 꿈꾸며 착실히 지역 예선을 치러 가던 에콰도르를 하루아침에 '특별한 팀'으로 만든 사건은 지난해 7월 29일 일어났다.

에콰도르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이던 크리스티안 베니테스가 27세의 한창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그는 멕시코 리그에서 카타르로 무대를 바꿔 첫 경기를 뛴 직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추초'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베니테스는 에콰도르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A매치 58경기에 출전해 24골을 터뜨렸다.

팬들에게는 사랑받는 스타였고 전술적으로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카드였으며 다른 선수들에게는 믿음직한 동료였다.

친한 동료이던 안토니오 발렌시아는 베니테스의 사망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형제여, 왜 지금인가?"라며 "네가 남긴 슬픔이 영원히 날 괴롭히겠지만 여전히 널 사랑한다"라고 적으며 애통해했다.

발렌시아는 자신의 팔에 '추초'라는 문신을 새기기도 했다.

에콰도르 축구협회는 베니테스의 등번호인 11번을 대표팀에서 영구 결번했다.

다만, 월드컵에서는 규정상 이 번호를 비워 놓을 수 없어서 예외적으로 사용한다.

이 번호는 베니테스의 뒤를 이어 주전 스트라이커로 올라선 펠리페 카세이도가 물려받았다.

그리고 에콰도르 선수단은 베니테스의 영전에 월드컵 본선 티켓을 바치자는 의지 아래 하나로 뭉쳤다.

예선을 통과해 브라질에 당도한 이들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조별리그 통과였다.

E조 시드를 받은 스위스와 16일(한국시간) 브라질리아의 마네 가힌샤 국립 주경기장에서 치른 조별리그 1차전은 그 첫 번째 고비였다.

진지한 표정의 에콰도르 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하늘을 가리키며 베니테스를 추모하는 짧은 세리머니를 거쳐 경기에 돌입했다.

스위스의 골문은 일찍 열렸다.

전반 22분 프리킥에서 에네르 발렌시아가 헤딩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일찍 얻은 1골의 리드를 에콰도르는 끝내 지키지 못했다.

교체 투입된 아드미르 메흐메디에게 후반 3분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끌려가는 양상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후반 추가시간, 스위스 문전에서 페드로 키뇨네스가 잡은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역습에서 스위스는 하리스 세페로비치의 극적인 역전골을 얻어내며 승부를 갈랐다.

골이 터지자마자 휘슬이 울렸다.

에콰도르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경기를 마무리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