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주사'라고 하기에는 시점이 너무 늦었고 뼈아팠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이 1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치른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허술한 수비와 무딘 공격 끝에 0-4로 대패했다.

이날 패배는 그동안 홍명보호가 출범한 이후 치른 총 16차례 A매치(5승3무8패)에서 최다실점 패배 타이다.

홍명보호는 지난 1월 미국 전지훈련에서 멕시코와 맞붙어 0-4 패배를 당했고, 이번 가나전에서 또다시 무득점-4실점 패배의 수모를 겪었다.

무엇보다 당시 멕시코전은 대표팀의 주력인 유럽파 선수들이 빠진 가운데 치렀지만 가나전에선 사실상 월드컵 본선에 대비한 베스트 멤버들이 나섰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특히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한국시간 18일 오전 7시)을 불과 여드레 앞둔 시점에서 당한 완패여서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을 바라는 팬들의 걱정은 더욱 깊다.

이날 평가전을 마지막으로 마이애미 전지훈련 일정을 끝낸 홍명보호는 11일 '결전의 땅' 브라질로 입성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 역습 대비-강한 압박 '낙제점'
홍명보 감독은 지난달 31일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을 시작하면서 모든 포커스를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 두고 훈련을 시작했다.

러시아의 강점인 빠른 역습과 강한 조직력을 뚫기 위해 홍명보호는 역습 차단과 강한 압박을 집중적으로 조련했다.

특히 선수들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난 6∼7일에 걸쳐 이틀 동안 훈련장을 걸어 잠근 채 '필승 전술' 연마에 애썼다.

하지만 마이애미 전지훈련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험 무대였던 가나 평가전 결과만 보면 사실상 '훈련 실패'에 가깝다는 평가다.

가나전에서 보여준 태극전사들의 모습은 체력적이나 전술적으로도 낙제점에 가까웠다.

상대에게 볼을 빼앗겨 역습을 허용했을 때 대처하는 방식은 서투르기만 했다.

첫 실점 장면에서도 수비수 김창수(가시와 레이솔)의 백패스가 상대 공격수에게 차단되면서 역습을 내줬지만 페널티지역에 포진한 4∼5명의 한국 선수들은 볼을 가진 선수에게만 시선을 빼앗겼다.

결국 2선에서 쇄도하는 선수를 놓친 게 결승골을 허용했다.

두 번째 실점 역시 역습 상황에 대한 집중력 부족이 원인이 됐다.

이청용(볼턴)이 상대 진영에서 빼앗기면서 역습으로 이어졌고, 이를 막던 곽태휘(알 힐랄)이 아사모아 기안(알 아인)에게 밀려 넘어졌지만 심판의 휘슬이 울리지 않았다.

심판의 눈치를 살피다 수비할 기회를 잃은 한국은 그대로 기안에게 단독 기회를 내주며 실점했다.

세 번째 실점은 수비 진영이 모두 갖춰진 상황에서 볼을 잡은 선수에게 거리를 주면서 중거리 슈팅으로 내줬다.

압박의 실종이 부른 참사다.

결국 분위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한 한국은 경기 종료 막판 네 번째 골까지 허용하며 완전히 무너졌다.

◇ 마이애미 전지훈련 '효과 있었나'
홍명보호가 마이애미를 전지훈련 장소로 선정한 것은 러시아와의 1차전이 열리는 덥고 습한 브라질 쿠이아바와의 기후적 유사성 때문이다.

하지만 훈련 초반 선수들이 시차와 기후 적응에 힘들어하면서 감기 증세로 4명이 훈련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을 맞았고, 홍 감독은 애초 계획보다 서두른 지난 5일 선수들에게 하루 휴식을 줬다.

홍 감독은 그동안 "계획대로 훈련이 잘되고 있다"며 얘기했지만 선수들의 컨디션은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오지 않았다.

이날 경기를 마친 이청용은 "선수들의 컨디션이 현재 60∼70% 수준"이라고 말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를 불과 여드레 앞둔 상황에서 걱정되는 수치임이 틀림없다.

매일 5%씩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러시아와의 평가전에 100% 수준이 된다는 셈이다.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100% 컨디션에 도달한 뒤 하강기를 가졌다가 경기 직전 다시 100% 상태로 회복하는 주기를 보여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렇지만 현재 태극전사들의 컨디션은 지난달 12일 첫 소집훈련에 나선 직후 아직 100% 컨디션을 찾지 못했다.

이날 가나전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경기력은 한 달 가깝게 소집훈련을 해온 대표팀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마이애미 전지훈련의 성과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여기에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이 많아 월드컵 무대에 대한 절실함이 적다는 것도 대표팀의 부진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 '그래도 희망을 꿈꾼다'
홍명보호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꿈꾸는 목표는 사상 첫 원정 8강이다.

한국 축구의 현실에서는 이상에 가까운 목표지만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쟁취한 원정 16강 진출의 아쉬움을 풀어달라는 팬들의 바람이 크다.

홍 감독은 현실적인 목표를 조별리그 통과로 잡았다.

조별리그에서 맞붙을 러시아-알제리-벨기에와 비교할 때 한국의 전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서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은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정신적으로 더 무장이 되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전례가 있다.

이를 통해 월드컵 4강의 기적도 이뤄냈다.

이번 가나 평가전에서 맞은 뼈 아픈 예방 주사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좋은 약이 되길 바라는 게 팬들의 심정이다.

(마이애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